2020년 12월 6일 대림 2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르 1:1-8
비대면 예배를 오늘까지만 예정했는데, 코로나19 감염 확산 추세가 심상치 않아 이러다가 성탄대축일 전례도 비대면으로 드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주일 이후 예배에 대한 조치는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영상으로 예배드려도,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오늘은 대림2주일이지만, 성인 ‘니콜라 축일’이기도 합니다. 성니콜라는 미라의 주교로서, 9세기에 저술된 성인전을 통해서 “기적을 행하는 사람”(wonderworker)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다에 나간 배를 위협하던 폭풍을 잠잠케 하여 선원과 뱃사공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베푼 선행으로 어린이의 수호성인으로도 유명합니다. 특별히, 사창가에 팔려 가기로 되었던 세 명의 소녀들을 위해서 큰돈을 지불하고 그들을 구해낸 이야기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자선과 선행으로 인도했습니다.
오늘날 성탄절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은 성 니콜라의 선행과 자선에서 유래합니다. 어린이들을 돌보고, 배고픈 이들을 먹이고, 아픈 자들을 치유하고, 억눌린 자들을 보살피는 일 등 예언서와 복음서가 강조했던 신앙의 가치들을 초대교회는 철저하게 실천했으며, 이 교회의 중심에 성 니콜라가 있습니다.
산타 클로스(Santa Claus)는 본래 성인(santa) 니콜라스(Nicholas)를 뜻하는 것으로, ‘클로스’는 ‘니콜라스’의 예명입니다. 특별히 성니콜라는 대한성공회의 수호성인입니다. 성니콜라 축일에 이 땅에 대한성공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교회이어야 함을 되새겨봅니다. 우리 교회도 미력하지만 구제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는데, 사회적 약자들과 더 강고하게 연대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며, 성 니콜라 축일 기도를 드리면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자로서 니콜라의 이름을 빛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그의 신앙과 삶을 기리는 대한성공회에 은총을 내리시어 성인과 같이 이 땅의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며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소서.”
지난주일, 대림1주일에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음’은 ‘사귐의 기도’를 드림으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며 사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대림2주일에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까요? 1독서와 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그리고 2독서와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는 회개입니다. “복음과 회개”라는 주제를 살피는 것으로 오늘 말씀들을 시작합니다.
1독서에서 이사야는 바벨론의 포로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기쁜 소식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공평과 정의가 흘려 넘치는 평화의 나라를 세워, 열방을 선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비전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케 해 주는 우상을 섬기며 타락했습니다. 이에 이사야는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한 것입니다.
심판의 선포는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끝내 돌이키지 않은 이스라엘은 마침내 심판을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토록 따르던 우상을 이방의 나라 본토에 가서 실컷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제 다시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시간이 종료되었다고, 이스라엘이 본토로 돌아가게 되리라고 선포합니다. 2절, "예루살렘 시민에게 다정스레 일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 그만하면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야훼의 손에서 죄벌을 곱절이나 받았다고 외쳐라."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래서 이사야는 외칩니다. 9절,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너, 예루살렘아. 힘껏 외쳐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라. 유다의 모든 도시에 알려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저기 오신다.”
‘하느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3절-4절,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본 “길”은 그의 고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왕의 길”이라고 불리는 대로였습니다. 이 길을 통해서 바벨론은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식민지에서 수탈한 재화와 노예를 들여와 제국의 질서를 강화했습니다. 다수 백성들이 절대 왕권의 폭압 아래서 노예로 살아가는 제국이 바벨론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선포하는 “길을 닦으라”는 외침은 이런 제국의 질서에 반대되는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에서 노래하는,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는 나라. 땅에서는 진실이 돋아나오고 하늘에서 정의가 굽어보는 나라”인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러 오실 메시야의 백성이 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 준비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황금과 권력을 숭배하는 제국의 백성으로 살 것인지, 공평과 정의를 이루시는 하느님만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으로 살 것인지’를 결단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은 하느님 나라를 이룰 구원자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요한이 나타나 이사야가 선포한 회개를 다시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르 1: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나라르 시작하러 오시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하느님이 보내신 마지막 예언자였습니다.
오늘 복음 마르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1,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시대에는 이미 통용되던 강력한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복음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종종 자신이 다스리던 지역에 전령을 보내어 복음이란 이름의 소식을 전하고 복종을 강요했습니다. 로마의 복음의 내용은 로마 황제가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자신을 숭배할 때 안전하리라는 것, 전쟁에서의 승리, 새로운 황제의 등극, 왕자의 탄생에 대한 소식 등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고백하던 칭호 주님이 예수께 드려졌습니다. 로마 황제만이 하느님의 아들인 줄 알았는데,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복음의 보다 구체적이 내용은 마르코 1장 14절, 1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하셨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이란 ‘하느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란 하느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우리 교회 표어로 표현하자면, 하느님의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가 흘러넘치는 샬롬의 나라입니다. 이사야가 선포한 그 나라로 하느님 나라는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중심 사상입니다.
어제 묵상한 복음 말씀에서 보았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가르치셨고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며 그 나라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느님 나라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개를 감동 받고 자신의 과오를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후회 정도로 생각합니다. 회개란 내 인생에 예수님을 주인을 모시고 그 분의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질서를 살아가는 삶의 변화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집에서 주인님으로 부르던 종이 교회에서는 주인에게 형제님이라고 부르게 되는 새로운 질서를 살게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도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종과 주인이 종은 목사가 되고 주인은 그 교회가 장로가 되어 함께 복음을 전하는 혁명적인 변화가 회개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가져오고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회개와 결단을 촉구합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하는 성탄은 당대 로마 제국의 복음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으로 새롭게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인지 결단을 촉구하는 회개의 선포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로마제국의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여 회개한 사람들로서,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대조 대항 대안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며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갔습니다.
성탄을 기뻐하는 우리에게 오늘 주님은 물으십니다. “주님의 재림이 복음인가?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러 다시 오실 예수님을 진정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이 세대를 보면, 로마제국의 복음이 세속의 복음으로 변장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노예화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 공동체인 교회조차 성장주의, 기복주의,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라는 세속의 복음에 점령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의 은총을 되새겨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선포에 유다인들은 회개했다는 믿음의 결단을 세례를 받음으로 확증했습니다. 우리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세속과 정욕과 마귀를 거절하고 하느님만을 믿고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약속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통해 세속과 정욕과 마귀를 따라 살던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은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대망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 세례의 은총을 붙들어 주는 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말을 주목해 봅니다. 8절,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시만,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예수님의 성령세례 약속이 오순절에 성취되었습니다. 오순절 이후 성령 세례를 받아 충만한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를 대신한 거룩한 희생임을 믿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고픈 열망으로 삽니다. 그래서 주님을 닮아가는 축복을 누립니다.
또 은사와 능력을 받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행전 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물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오늘 권면하는 대림의 삶을 살아갑니다. 11절,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 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쓰십시오.”
오직 성령님만이 세속의 복음을 부인하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지속적인 회심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대림의 그리스도인은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살아갑니다. So you should serve and honor God by the way you live. 삶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며 영광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 표어대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쓰며” 삽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인사가 무엇이었다고요? 마라나타! 다시 오실 주님을 eagerly wait for했던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대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함으로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된 교우 여러분,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쓰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를 위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더욱 의지하며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에페 5:18,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약속하신 대로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이 소식이 여러분에게 복음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을 바라보며,
날마다 하느님 나라를 선택해 가는 회심을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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