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부터 방역 지침이 2단계로 조정되어 오늘은 분당 성남 서울 지역 교우들이 참여하여 예배드리고 계십니다. 다음 주일에는 용인 판교 광주 기타지역 교우들이 주일예배에 참석하시게 됩니다. 코로나 19 감염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 걱정이지만, 자율방역을 통해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 재의수요일 전례를 봉헌하며 사순절을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아내와 단 둘이 재의수요일을 지켰었는데, 올 해는 많은 교우들이 참석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축복한 재를 받지 못하신 교우들은 오늘 예배가 끝나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동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선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9절, 예수님은 요한을 찾아 가셔서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자주 말씀드렸듯이, 이스라엘에서 세례는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받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런 세례를 유대인들이 받았다는 것은, 자신이 하느님을 무시하고 살던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씻음 받아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물세례를 죄 없으신 예수님이 받으셨다는 것은 세례자 요한이 전개한 회개 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표시이고, 세례를 받는 백성들과 예수님 자신을 동일시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시는 공생애의 출발을 의미했습니다.
10절, 예수님이 요단강에 잠기셨다가 나오시니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임했습니다. Anointing, 성령의 기름부음 사건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선택받는 특별한 사람들, 왕 제사장 예언자들에게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을 부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지상 대리자로 사명을 부여 받는 것입니다.
11절, 물세례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맘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은 “너는 메시아다!”는 성부 하느님의 확인입니다.
여러분도 물로 씻는 세례를 받았고 기름을 발랐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세례는 예수님과 동일한 사건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주님의 거룩한 형상은 재발견되고, 회복되며, 새롭게 됩니다. 세례를 받은 다음 물 밖으로 나올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나를 택하신 하느님께서 세상을 향한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12절,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나가 40일을 지내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준비하며 일인 수련회를 가지신 겁니다. 수련회 프로그램이 특이합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단식하셨다고 합니다.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탄의 3가지의 유혹입니다.
사탄은 “너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빵, 명예, 권력을 목적으로 살아라. 하느님께 순종하여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공생애가 아닌,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라. 나를 숭배하면 이것들을 너에게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루가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을 이겨내신 예수님을 사탄은 잠시 동안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의 사명을 살아가는 공생애 동안 사탄의 유혹은 계속 될 것이라는 암시입니다.
세례를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된 그리스도인에게도 사탄의 유혹은 끊이지 않습니다. 맘몬이 다스리는 거대한 탐욕의 제국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나만을 위해서 살도록 유혹합니다. 세례 이전의 삶으로 퇴보시키는 유혹은 강렬하기만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일구며 살 것인가 내 왕국을 일구며 살 것인가? 공생애로 살것인가 나만을 위해서 살것인가?” 사탄의 유혹과 맞서는 영적 전투가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 기도가 얼마나 여러분에게 간절하신지요?
14절,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은 갈릴래아로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공생애를 살아가십니다. 예수님이 외치신 첫 선포가 15절입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이제 때가 찼습니다. 역사 가운데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 통치를 말합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다스림 아래 살 때 인간은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인생을 펼쳐 갈 수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재의 수요일에 재를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바르며 “인생아 기억하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먼지에서 온 유한자이며, 먼지로 돌아갈 죽음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명확한 선언입니다. 저는 1964년 1월 23일에 태어났지만, 잠시 후나 혹 내일, 언제든지 죽음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를 누리는 구원의 때입니다. 고후 6:2,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자비를 베풀만한 때에 네 말을 들어 주었고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를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화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회개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크게 유턴을 그리며 하느님을 향해 나가는 삶입니다. 회개의 표지가 세례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정체성이 없다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과 회개 없이 세례를 받았다는 반증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의 심각한 문제는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죄라는 말이 지나치게 우리를 정죄하는 말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대 사회에 낙관적이고 진보적인 세계관이 퍼져서, 성서가 죄라고 부르는 것들이 ‘대안적인 생활방식’, ‘사회 부적응’, 부적절한 교육의 결과‘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C. S. Lewis는 “우리가 비참한 죄인이라는 증거는 우리 스스로 그러한 상태를 자각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수, 폭력, 거짓말, 교만, 편견, 부정 등등 우리가 현실에서 저지르는 잘못들은 핵심이 아닙니다. 우리 문제의 핵심은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들은 우리 죄의 산물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선포할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이토록 깨어지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는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죄라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시어 십자가를 지셨고, 그 분을 믿으면 사랑이신 하느님의 다스림 아래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합니다. 예수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완전한 다스림 가운데 사시는 완전한 순종으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하느님의 나라의 축복을 흘러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였던 갈릴래아는 유대보다 비옥한 땅으로 더 번창하고 인구도 많았는데, 대부분의 토지를 예루살렘의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어, 갈릴래아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농으로 살아, 정치 사회적으로 갈릴래아는 우범지대의 대명사였고 무장 독립을 꿈꾸는 젤롯당의 근거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오복음 4장 15절 16절에서는 갈릴래아를 ‘이방인의 땅, 어둠 속에 앉은 백성,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사시며 그들을 환대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며 자신을 통해 임하는 하느님의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지금 인류의 모습이, 죽음의 그늘진 땅 어둠 속에 살아가는 갈릴래아 사람들 같습니다. 세계의 부는 소수에게 독점되어 수많은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으로 살아갑니다. 생태계는 파괴되어 그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 코로나이고, 이상기후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K방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도 K자 곡선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느님 나라를 누리시며 갈릴래아 사람들을 그 나라로 초대하셨듯이, 이 시대의 교회도 깨어지고 신음하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드러내는 복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곳이 광야입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그곳으로 내몰았습니다. 예수님은 들짐승들이 창궐하는 광야에서 단식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사탄의 유혹을 이기며 메시아의 사명을 더 굳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깨어져 신음하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복음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여러분 모두는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사순절은 우리를 광야로 초대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광야로 초대하는 사순절의 프로그램을 재의수요일에 읽은 복음서가 말해줍니다. 뭐였죠? 자선, 기도, 금식, 재정.
자선 – 자비로운 마음으로 선을 베푸는 착한 행실입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몇 주일 전 복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측은지심,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기도 – 광야는 하느님하고만 홀로 있는 고독의 자리입니다. 이 시간을 가질 때 여러분은 하느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측은지심, 주님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품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여러분에게서 기도의 시간을 빼앗으려고 강렬하게 유혹해 올 것입니다. 그 모든 유혹을 이기고 하느님하고만 홀로 있는 고독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십시오.
단식 – 단순한 삶, 자발적 가난, 공장식 사육을 거부하는 금육, 등등으로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맘몬니즘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올 해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탄소금식을 제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서가 제시하는 경건 훈련의 덕목은 재물입니다. 하느님과 맞서는 우상이 맘몬, 재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을 섬기는 백성임을 확증하는 표지가 돈 사용 여부입니다. 부자이든 가난한 이든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을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청지기로 우뚝 서는 사순절이 되기 바랍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된 여러분,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광야에서 유혹을 이기시며, 갈릴래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신 예수님을 따라 갑시다.
광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느님 나라를 누리며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뚝 서는 사순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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