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성직자 여러분과 교우들에게 드리는 사목 서신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시는 성직자 여러분의 가정과 사목 위에, 성직자와 함께 각 교회에서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여름 수련회와 행사를 위하여 여러가지로 헌신하여 주신 평신도 지도자들과 교우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이번 람베스 회의를 통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와 문화, 전통이 다른 나라의 주교들이 서로 다른 생각과 신학, 그리고 신앙 노선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성공회가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가는 힘과 능력이 있는 교회라는 것을 더 깊이 깨달으며, 성공회에 대한 자긍심과 희망을 본 것은 가장 소중한 경험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시작한 동북아시아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TOPIK과 후속 프로그램은 이번 람베스 회의에서 서울교구 어머니연합회의 평화콘서트와 감사성찬례 봉헌, 그리고 TOPIK에 대한 결의문 채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대한성공회의 위상을 높이며 세계성공회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문제를 선교적 과제로 삼고 후속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이끈 큰 성과라 하겠습니다.
우리 대한성공회는 한국교회 안에서 작은 교단입니다. 교세는 작고 재정은 열악합니다. 서울교구가 대전교구나 부산교구에 비해 나은 편이라고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나 조건을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교회 안에 이념 논쟁과 신앙적인 색깔의 차이로 서로 불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교구장직을 수행하면서 여러 교단과 단체의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성공회야말로 한국교회 안에서 가장 희망이 있는 교회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교회는 작지만 건강한 교회이고, 윤리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으며, 우리 교회의 많은 성직자들이 자발적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살면서 사목에 헌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서울교구는 후임 교구장으로 김근상 주교를 선출하여 서품하였고, 저의 임기는 이제 불과 몇 개월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번 람베스 회의에 참석하면서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늦은 감이 있지만 남은 기간 동안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 가는 과정을 만들어 우리 스스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교구 중심으로 복음화 10년 운동, 새천년 복음화 운동, 40개 교회개척 운동, 나눔․생명․평화를 지향하는 교구정책 등 다양한 선교정책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성직자 간담회와 웍샵, 그리고 성직자 포럼 등을 통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안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종합적으로 반성해 보면 대부분의 선교정책이나 교구 사업계획이 성직자와 평신도, 교구와 교회 사이의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인 선언이나 제안이었기 때문에 그 실효성이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교정책이 추진 기구가 불분명하고 예산에 대한 대책이 수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정책에 대한 일정과 평가 기준이나 점검 기구가 없는 상태여서 사문화되기 일쑤였습니다.
이에 앞으로는 그동안의 실패의 요인을 거울삼아 교구의회를 앞두고 평신도와 성직자가 심도 깊은 논의 과정을 통해서 서로의 의견에 경청하고 함께 공감대를 형성해 가기를 원합니다. 몇몇 성직자들과 평신도들 가운데는 이런 논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겠지만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과 지혜를 모으는 이 논의 과정에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이 교회는 평생을 몸담아 온 교회이고 성직자 여러분들도 젊음을 바치며 앞으로 섬겨야 할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믿음의 터전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더 건강하고 활력 있는 교회, 하느님의 나라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교회로 거듭 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런 교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저는 람베스 회의를 다녀와서 람베스 회의 보고 겸 한 차례의 총사제회의와 한 차례에 걸쳐서 각 교무구 총무와 성직자 운영위원, 제도개선특별위원회 성직자 위원, 교구스텝과의 연석회의를 통해서 저의 이런 의지를 표명하였고, 또 한 차례의 연석회의를 통해서 저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 과정을 진전시키기로 하였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논의는 여러분 모두가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일정을 조율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금년 교구의회 때까지 여러분이 제안한 모든 의견들이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그것이 무리라면 교구의회를 통해서 앞으로 1,2년 이내에 교구가 밟아가야 할 과정에 대한 분명한 결의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도 성직자 여러분과 평신도 여러분을 통해서 발의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저는 교구장 주교로서 후임 주교와 협의하여 이 논의과정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성직자와 교우 여러분!
다시 한번 우리 모두 믿음의 꿈을 꿉시다. 우리 대한성공회가 지금은 겨자씨와 같이 작은 교단이지만 앞으로 더 크게 자라나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큰 나무가 되어 이 땅에 어둠의 그늘 속에서 소외당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 불의한 세상에 정의와 평화, 그리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 모든 차별과 편견의 장벽을 허물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그런 교회를 꿈꾸며 우리의 논의를 진전시켜 나갑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실 것 믿습니다.
2008년 8월 29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 박경조(프란시스) 주교
'신앙/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회 - 가족교회의 자랑과 반성 (0) | 2008.09.08 |
---|---|
[안내] 대한성공회 여성선교주일 (0) | 2008.09.03 |
(깔깔묵상) 다이어트 중에 피자 먹는 방법 (0) | 2008.07.27 |
(깔깔묵상) 개구장이들 (0) | 2008.07.16 |
(깔깔묵상) 결혼 불가의 이유 (0) | 2008.07.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