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리자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5월 12일 승천후주일 설교 말씀)
‘귀천’(歸天)이라는 시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은 평생을 욕심 없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나 혹은 친구들이 집어주는 단돈 몇 푼만으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자식도, 돈도 없었습니다. 과거에 동백림 사건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폐인이 될 정도로 고문을 받아 심신이 온전치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수개월 동안 시립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좋다! 참 좋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했다고 합니다.
생전의 천상병 시인 (출처 : 도서출판 답게)
歸天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아침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그는 돌아갈 곳이 분명했습니다. 그에게 이 세상은 소풍이며, 그 아름답고 꿈같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갈 하늘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자신이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땅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비참한 고난의 세월을 살면서도 “좋다! 참 좋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승의 삶에서 소유와 소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탄과 울부짖음과 저주의 입술을 깨물어도 시원치 않을 상황을 오히려 그는 가슴 설레는 ‘소풍’처럼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승리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확신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 받고 소외받고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이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공동체, 그의 지체가 되기만 하면 이미 하늘나라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승천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영원한 만남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 신앙인들은 하늘나라에 속해 있으면서 이 세상을 소풍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은 모든 인간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궁극적인 한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 내려오셔서 그 권세를 물리치심으로서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는 것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덕을 쌓아서 죄를 삭감해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용서하심으로,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서 승리하실 때 우리는 그 승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기 전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주 안에서, 주가 내 안에서 살아계실 때 우리는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록 이 세상이 인정하지 않고,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도 내가 속해 있는 곳이 천국이고 그 나라의 영광을 누리게 될 때, 우리는 세상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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