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르러 왔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18일 연중 20주일 설교 말씀)
우리는 평화와 사랑의 예수님이 늘 격려와 위로를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복음서에는 쉽게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말씀을 하신 대목을 만날 때마다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루가복음 12장에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마태복음에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적혀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 간에도 심한 대립이 일어날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반대를 한다니... 도무지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옴직한 가정 파탄을 예고하시니 이를 읽는 사람은 ‘예수께서 진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라는 의문을 갖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예수께서 의도하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말씀을 가정 파탄이나 불행을 조장하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종말과 심판 앞에서,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는 입장에서 이 복음을 읽어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임박한 하느님 나라 앞에서 예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인간관계와 행복과 평화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불은 우리들 안에 있는 불행의 씨앗과 그 찌꺼기들을 태우는 불입니다. 구약에서도 종종 하느님의 말씀을 ‘불’로 비유를 하곤 했는데 패역한 세상을 심판하고 거듭나게 하는 불의 의미를 지닌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행의 씨앗은 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유혹이며 안일이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며 이기적인 욕망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빵이나 명예나 권세를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죄의 권세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침묵하고 안주하는 것을 평화라고 합니다. 굶주리며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하면서 빵을 저축해 놓고 자기 가족들끼리 풍요롭게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세상에서는 형제애가 사라지고 시민의식, 동포적인 유대가 단절되고 개개인이 자기 이익만을 찾아 나서면서 분자화(分子化)되어 버리는 사랑상실의 세상이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는 단순히 집을 떠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관습, 즉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과 안일한 삶의 태도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물과 가족을 등지고 예수님의 길을 떠난 어부들을 생각하면 기독교 신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오는데 안일하게 작은 만족에 머물러 있으면서 전혀 깨어있지 않는 사람들... 날씨는 짐작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삶의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삶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변화가 두려워서 지금 감수해야 할 희생보다는 장래의 재난을 택하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케슬러라는 사람이 어느 별장에 있을 때 프랑코 군이 진격해 온다고 전해졌습니다. 그들이 밤사이에 틀림없이 도착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잡히는 날에는 그는 총살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도망치면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그날 밤은 춥고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은 따뜻하고 아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머물렀는데 끝내는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일 후에야 그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저널리스트의 노력으로 거의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종류의 행동은 또 대수술을 요하는 중병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것이 싫어서 검사를 받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는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회피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김으로서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것이 시대의 뜻을 아는 지혜일 것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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