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로야, 나오너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6일 사순 5주일 설교 말씀)
화사한 봄꽃들이 일제히 피었습니다. 저 남쪽부터 서서히 올라오면서 피는 것도 아니고, 이 꽃이 피고지면 저 꽃이 피고... 이런 순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전국적 동시다발로 피었습니다. 언제 꽃이 피나... 하는 기다림도, 새록새록 살며시 돋아나는 그 신비로운 모습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 마음도 무색하게 전국적인 꽃들의 반란이 일어난 듯합니다. 인간의 지배에 더 이상 못살겠다는 아우성 같아서 현란하게 피었다 지는 꽃들이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꽃들은 언제 죽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길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꽃잎들을 보면서, 저 꽃들은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 밝은 미소와 고운 빛깔이 여전히 살아있기에 꽃이라 말하기에 충분합니다. 빨간 단풍잎이 맑은 개울에 떠다니는 것을 보고서 그 나뭇잎을 죽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나름대로 우리에게 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심장박동과 호흡이 멈추면 죽었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살아도 살아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으니...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영혼의 빛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 영혼의 빛이 사라지고 생물학적인 육신만 남는다면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비통한 마음이 복받쳐 오르셨다고 합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세상에서 슬플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은 매우 비통해 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그리도 슬퍼하셨습니다. 이미 장사지내고 시신이 썩은 냄새가 나는 그의 무덤에 가서 막아놓은 돌을 치우도록 하고 큰소리로 외치십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그리고서 죽었던 라자로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라자로의 부활,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 런던 국립 미술관 소장)
바로 이 대목을 두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권능을 말합니다. 죽은 이를 살리신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이 분명하다는 말씀입니다. 백번 천번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너나 나나 다 죽은 이를 살려달라고 예수님에 떼를 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이 한 둘이 아닐 테니까요. 그 때마다 다 살려내면 이 세상은 어찌 되겠습니까? 죽은 라자로가 다시 살아났다는데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정신적인 고통 속에 있는 라스꼴레니코프가 창녀 쏘냐에게 성경을 읽어 달라고 하는 대목에서 쏘냐는 바로 라자로의 부활을 읽어주었습니다. 죄라고 하는 돌무덤 속에 갇혀 죽어있는 라스꼴레니코프의 영혼이 깨어나라는 뜻이겠지요. 라스꼴레니코프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오직 그가 죄를 벗고 나올 때 비로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처럼 심한 죄를 짓지는 않고 삽니다. 그러나 잠들어 있는 영혼, 굳게 닫혀 있는 영혼의 문은 우리를 죽음 속으로 안주하게 합니다. 세속의 삶에 휩쓸려 살면서 영혼의 생명을 돌볼 틈이 없이 그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재미와 성공이라는 헛된 신화를 좇아서 자신의 행복과 영적인 기쁨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슬퍼하실 일이 아닐까요? 비통한 표정으로 우리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오시지 않을까요?
지금 예수님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돌무덤을 향해 외치십니다. ‘아무개야! 나오너라!’ 이제 그만 이기심과 교만과 잘난 척과 물질 숭배와 쾌락의 무덤에서 나오라고 외치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꽁꽁 묶어놓은 것들을 풀어야 합니다. 진리로 풀어서 자유롭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만의 영혼의 빛을 간직해야 합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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