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평화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27일 부활 2주일 설교 말씀)
예수님 제자들이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듯이 자신들도 그렇게 죽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에 가득 찬 유다인들은 훗날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이고, 헤로데 왕이 야고보를 참수하자 환호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제자들이 겁을 먹을 만도 합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무지에서 온다고들 합니다. 예를 들면 암 진단, 채무 독촉, 법원의 출두 명령서 등을 받아놓고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하면 될지를 잘 알면 두려움은 훨씬 줄어듭니다. 깜깜한 밤에 숲속을 지날 때 짐승이나 강도가 나타날지 모르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는 그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두려움의 원인을 상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집착하고 사랑하는 것을 잃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재물이 많아서 그것을 상실하면 어찌하나 걱정하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주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것 역시 그렇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상실하는 것도 두려움의 큰 원인이 되겠지요.
그러나 두려움의 진정한 원인은 영혼의 몰락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자신들이 굳건히 믿고 따르던 주님을 배반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영혼의 몰락이었습니다. 영혼이 상실되니까 앞으로 어찌 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걱정이 됩니다. 유다인들에게 붙잡히는 날에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것은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배신의 입맞춤, 안젤리코, 1433)
영혼이 침몰해 버린 사람들은 어쩌면 편할지 모릅니다. 죽은 물고기가 물에 둥둥 떠다니듯이 이리저리 흘러가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더욱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공동체의 영혼이 얼마나 몰락했는지를 생방송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무책임하게 도망쳤습니다. 이를 두고 살인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인간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살아있다고 보기에 힘든 상황입니다. 자신의 목숨이 상실되는 것이 두려웠을 뿐입니다. 선박 업자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서 무엇 하나 안전을 위해서 제대로 준비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돈을 잃는 것이, 덜 버는 것이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무능한 관료들과 구조 당국자들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질 않았습니다. 책임 떠넘기기와 남의 비극을 자신의 과시나 실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모습을 보면 이미 이들의 영혼은 침몰하고도 남았다고 보여집니다. 그저 윗사람의 질책과 여론만 의식하고 두려워 할 뿐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 앞에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조금도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절대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철석같이 맹세했다가 하룻밤 사이에 세 번이나 자기는 예수를 모른다고 했던, 그래서 통곡을 했던 베드로도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습니다. 당신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영혼이 침몰하여 바닥이 드러난 제자들한테 새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평화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되살아나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만 암송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부활의 의미를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죽었던 영혼이 되살아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저주하고 분풀이 함으로서 덮어질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정의롭게 풀어가되 침몰해 가는 우리의 영혼을 구조하는 일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침몰시킨 불의와 부패와 배금주의와 관료주의가 청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죽어간 꽃다운 청춘들도 편안히 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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