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가족관계
로마가 기독교인들을 박해 할 때 그 이유는 매우 비종교적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미개하다는 것과 야만적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서로 다 형제자매라고 불렀는데 이를 두고 근친상간하는 미개인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어두운 곳에 모여서 사람의 살과 피를 먹으니 이를 두고 야만적인 식인종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전혀 생각지 않은 육적인 관계와 실체만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혈통적인 가족관계를 의미하지 않고 영적인 가족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보혈 역시 영적인 양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의 친척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예수가 마귀에 사로잡혀서 고향과 친척과 직업을 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내용은 전혀 몰랐습니다. 오로지 관습과 혈육관계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사람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상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서른이 넘어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니 아마도 예수의 친척들은 성인으로서 직업을 가지고 가정생활과 다른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식을 깨뜨리고 예수께서 독자적인 삶을 이루어가시니 그들의 눈에는 미쳤다고 보였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주변에서 마귀 들려서 미쳤다는 소문까지 들으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예수를 붙들러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엄중히 말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든 입으로 어떤 욕설을 하든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 죄는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방하고 그의 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이 말은 비정하게도 들립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철저히 영적인 관계를 우선시 합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지나칠 정도로 가족을 떠나고 십자가의 길을 갈 것을 강조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족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등질 수는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가족관계를 부정하고 성직자나 수도자가 된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생겨날 것입니다. 또 ‘신앙촌’이나 ‘아가동산’처럼 살아간다면 오히려 반 신앙적인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합니다만 신앙은 순례자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리와 성스러움을 찾아서 끊임없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세월과 상황에 떠밀려 구름 흘러가듯이 정처 없이 가는 길이 나그네 길이라고 한다면 순례자의 길은 진리가 있는 그곳을 동경하면서 구도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선택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길이 되겠습니다. 그곳에 진정한 자유가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순례자의 길은 작은 편안함에 머물러 그곳을 탐하지 않습니다. 작은 소유에 사로잡혀서 고통 받지 않습니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는 기쁨과 보람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재물과 권세와 명예에 집착하고 또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가정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더 많은 재물과 학력과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가정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족들을 만나 살아가게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족관계에서 무슨 목표와 이유를 따진다는 것도 이상하게 여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가족으로 만나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까닭은 함께 순례를 하기 위함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녹은 쇠에서 생겨나 쇠를 갉아먹습니다. 쇠로 만들어진 것은 단단해서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쇠를 못 쓰게 만들고 마는 것은 결국 쇠 자신에게서 생겨납니다. 가족관계가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관계이지만 이것이 세속화되고 탐욕과 안일과 습관의 먼지로 뒤덮여 있을 때는 영적인 성장과 쇄신에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가족관계는 영적으로 한 번 더 거듭나야 합니다. 혈육의 관계에서 영적인 관계로 거듭나 함께 순례를 한다면 더욱 행복은 깊어질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7일 연중 10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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