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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하늘에서 내려온 빵

by 분당교회 2015. 8. 10.

하늘에서 내려온 빵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어린 조카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다 못해 빵을 훔치다가 걸려 5년 동안이나 징역을 살게 됩니다. 탈옥을 거듭 실패하면서 무려 19년이나 감옥 생활을 하고 세상에 나왔지만 아무도 반겨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니, 가는 곳마다 범죄자를 들여놓을 수 없다고 하면서 배척했으므로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었고 지친 몸을 이끌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미리엘 주교의 사택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미리엘 주교는 그를 반겨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평소에 매우 검소하게 생활하는 주교는 적은 음식을 나누어 그에게 줍니다. 아마도 장발장은 감옥 이전에도 굶주림에 시달린 그였기에 식탁에 앉아 편안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감옥의 강제노동과 학대에 시달리기만 했던 장발장은 은수저로 음식을 먹으며 매우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범죄자인 자신을 이토록 환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을 나중에 깨닫습니다. 장발장은 주교의 집에서 은수저와 식기를 훔쳐 달아나다가 붙들려 되돌아왔는데 경관들 앞에서 미리엘 주교는 자신이 그에게 주었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은촛대까지 주면서 왜 이것들은 안 가져갔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서 미리엘 주교는 장발장에게 말합니다. “내 형제인 장발장, 당신은 이제 악에 사는 게 아니라 선에 사는 것이오.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파멸의 정신에서 끌어내어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장발장의 인생은 완전히 변화되어서 선한 사람의 표상으로 나타납니다.

미리엘 주교가 베푼 한 번의 식사 그리고 은촛대를 건네주는 그 마음으로 장발장은 용서와 사랑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불과 23살의 나이에 7명이나 되는 어린 조카들이 굶주림에 허덕일 때 훔칠 수밖에 없었던 빵은 ‘상품’이었고, 빵 가게 주인의 재산이었습니다. 그것은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돈을 지불하고 사야만하는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물건을 훔친 죄는 가혹했고 매정했습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베푼 식사는 음식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독하고 강하게 뻗어있는 증오와 원망을 녹이고 새 영혼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 생명의 양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장발장의 입장에서는 천상의 양식이었을 것입니다.



(레미제라에서 장발장에게 용서와 사랑의 세례를 배푼 미리엘 주교)


예수께서 스스로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빵이라 하셨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말 먹이통에 누우시더니 결국은 모든 이들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면서 자신의 몸과 피를 받아먹으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찬례 때마다 예수님을 먹습니다.

가끔은 영혼이 악한 사람이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장발장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가 흘러들어 갔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완전히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위대한 능력입니다. 반대로 장발장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자베르가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성체와 보혈을 받아먹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베르는 피도 눈물도 없던 사람으로서 오로지 법과 규칙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그는 수녀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흘러들어가는 그리스도의 몸 역시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누구에게도 차별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니까요. 다만 그 사랑으로 변화되어 가는 방향이 그리스도의 자비와 의로움이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군중들은 그 사랑과 영적인 차원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빵이라는 물건에 관심이 많았던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찬 때 나누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주술적으로 생각해서 무슨 신비의 영약쯤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몸이니까 먹으면 병도 낫고 건강해지고 똑똑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천한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천상의 양식은 세상의 물질 또는 상품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우리의 궁핍을 모면한다거나 탐욕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또는 건강상의 자연적인 흐름을 거역해서 불치의 병이 씻은 듯이 낫게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와 사랑이 흘러들어옴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9일 연중 19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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