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나오는 것
어느 유명한 대학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애로 고통을 당해왔지만 그 학생은 아주 쾌활하며 동시에 낙관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해 많은 상을 타기도 했고 동료 친구들로부터 존경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소아마비인데도 어떻게 이토록 명랑하고 자신감이 넘치게 사는지 그 비밀을 말해 줄 수 있겠니?’ 그러자 그는 ‘별 것 아니라구. 소아마비가 내 마음까지 파고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지.’
이 학생의 마음은 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인가 봅니다. 장애로 인해서 마음의 병까지 드는 경우 세상을 원망하고 남들과 비교해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끝없는 피해의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자신도 늘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육신은 멀쩡해도 마음이 병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에이즈니, 에볼라 바이러스니, 메르스니 여러 가지 새로운 병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아마도 현대인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병은 우울증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에 비해서 우울증은 급격하게 늘어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울증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며 인간관계의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병든 사회가 창궐하게 만든 병이며,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육신의 장애는 자기만 불편하면 되지만 영혼의 장애는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상처를 안겨줍니다.
겉으로 경제성장의 결실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갈수록 세련된 치장을 하며 화려한 무대를 즐기고 있지만 속으로 병드는 현상은 깊어만 갑니다. 행복해 보이려고 사는 사람들의 속사정은 오히려 우울한 것입니다. 역시 행복은 겉모양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고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는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른바 정결예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는 죄가 없는 정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정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죄가 마치 바이러스처럼 손에 묻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몸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시장에는 온갖 속임수를 비롯한 죄가 난무하는 곳인데 이곳을 지나온 사람은 반드시 온몸을 씻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청결한 생활을 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손을 씻고 몸을 씻는다고 죄가 씻어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라는 것은 안에서 생성되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결예법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로 죄인인가 아닌가를 따질 수 없습니다. 속 안에 죄가 가득 찬 사람이 아무리 청결하게 몸을 씻는다고 죄가 씻길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행위로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자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율법은 인간이 올바른 사고를 하고 공동체 생활에서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를 인식하고 살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교훈을 주기도 하고 길 잃은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형식적인 것에 치우친다면, 회개 없이도 행위로 용서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경우가 생깁니다. 율법은 잘 지킨다고 했지만 마음속에 죄는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죄는 더 깊어지고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온갖 악한 생각입니다. 이런 것들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물론 유혹을 당하는 경우, 또는 강요에 의해서 악의 길을 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책임전가이고 자기합리화입니다.
썩은 오물이 풍기는 악취는 바람이 불고 또 씻으면 없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집니다. 그러나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악취, 즉 인격의 악취는 잘 지워지지도 않고 오랫동안 상대방을 괴롭힙니다. 독이 되는 한마디, 이기적인 행동으로 상처받은 것은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는 구원받을 사람에게나 멸망당할 사람에게나 다 같이 풍겨나가지만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역겨운 죽음의 악취가 되고 구원받을 사람에게는 감미로운 생명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2고린 2:15)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30일 연중22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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