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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산다

by 분당교회 2015. 11. 15.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산다

종말이라는 말 앞에서 두 부류의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종말을 두려워하는 사람. 말 그대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은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그리고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어서 차라리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사람일 것입니다. 지옥과도 같은 아우슈비츠 탄광에서 동물 이하의 핍박을 받는 상태라면, 모진 고문을 받으며 피를 토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종말을 기다릴 것입니다. 반면에 종말을 두려워하거나 아예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이대로가 살만한 사람이며 이대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는 지은 죄가 많아서 종말과 심판을 두려워할는지 모릅니다.

기원전 200여 년 경부터 유대에는 종말 사상이 생겨났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민족의 침략과 핍박을 견디고 또 견디어 내지만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현재의 시간은 악하고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은 선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세의 시간은 가면 갈수록 악해지고 고난은 더 심해지지만 종말이 오고 새로운 시간이 되면 현세를 지배하는 악의 세력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적 순수성과 선한 의지를 간직한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이 종말 사상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고 어떤 핍박 속에서도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고 다가오는 그 날과 그 시간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종말론적인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외친 것이 바로 그 때이며, 그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할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13장에서 예수께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남김없이 파괴될 것이며 전쟁과 흉년과 기근이 들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종말이 아니고 다만 고통의 시작일 뿐이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는 삶과 신앙의 중심입니다. 그 성전은 유대인들이 피땀을 흘려 재건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집보다도 먼저 성전을 짓는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남자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다운 일이며 백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웅장한 성전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유대전쟁으로 말미암아 70년경에 완전히 붕괴되고 맙니다.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이 아마도 이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이 대목을 기록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대한 신앙적 해석이 더욱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이 성전이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고 한 것은 종말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기존의 종교와 신앙의 붕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정화시키셨듯이 이미 기존의 유대교는 썩어 있었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완고하고 고집이 세고 형해화한 율법만 붙들고 있었기에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메시아가 그들 가운데 왔지만 오히려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바로 그런 신앙과 영혼의 소유자들의 성전은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전이 허물어지고 재난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재난 앞에서 가짜 그리스도가 출현합니다. “장차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그리스도다!’하고 떠들어 대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기원과는 달리 진짜 현실은 악하고 또 약자들이 살기에는 너무나 힘듭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희망이 보이질 않고 가난은 대물림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소위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서 마치 진리를 소유한 듯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훈계하고 타이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불순한 생각을 교육받아서 현실을 한탄한다고 매도합니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습니다만,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삽니다. 예수께서도 당황하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라.’라고 경고하십니다. 현실이 얼마나 아픈지 느끼지도 못하고, 이웃이 얼마나 힘겹게 사는지 공감할 줄도 모르고, 진실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내세우는 거짓 진실을 믿는 사람들은 재난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려는 사람들의 영혼은 잠들어 버립니다. 아무리 화려한 성전을 짓는다 해도 그들의 성전은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15일 연중 33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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