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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가난한 여인의 봉헌과 빈자일등

by 분당교회 2015. 11. 8.

가난한 여인의 봉헌과 빈자일등


가난한 여인의 헌금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헌금 궤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 궤에 돈을 넣는 것을 바라보고 계셨을 때 부자들은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여인 한 사람은 와서 겨우 렙톤 두 개를 넣었습니다. 그 작은 돈을 헌금 궤에 넣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을까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며 위대한 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돈은 매우 적은 액수이지만 그 여인이 하루 동안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아마도 구걸했을 것입니다. 배고픔을 이기고 생명을 간신히 유지할 돈이었지만 기꺼이 봉헌을 한 것입니다. 


The Widow's Mite by James Tissot 


이 여인은 돈을 바쳤다기 보다는 자신의 생명과 생활 모든 것을 바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값진 것을 하느님한테 바친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근본입니다. 예배란 자신의 가장 귀중한 가치를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부자들에게는 많은 돈이라 할지라도 그 돈은 자신이 실컷 쓰고 남은 돈입니다. 인생에 귀중한 것을 바친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여인이 하느님께 바친 것은 믿음을 바친 것이고 마음과 희망을 바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시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능력과 집착을 뛰어넘은 자기초월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쳤던 것과 같은 절대적인 순종이며, 마리아라는 여인이 값비싼 나르드 향유를 예수의 발등에 붓고 씻어 드린 것과 같은 ‘거룩한 낭비’입니다. 마음으로 하느님과 상통하는 관계입니다. 그러기에 이 여인은 봉헌을 하면서 그 무슨 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아닙니다. 이 진실한 마음은 예수님을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불교에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고사로 유명한데, 이는 비록 가난하지만 정성스럽게 공양하는 한 개의 등잔불은 큰 부자가 정성심 없이 공양하는 만 개의 등잔불보다도 훨씬 값지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가 왕의 초청을 받아 왕궁에서 설법을 하고 밤이 깊어서 돌아가는데 왕은 대궐에서 절에까지 가는 길에 수만 개의 등불을 켜서 공양을 했습니다. 이 때 가난한 한 노파가 거리에서 구걸한 돈으로 기름을 사서 등불 한 개를 켜서 밝혔습니다. 이 한 개의 등불은 왕의 수만 개의 등불보다 더 밝았고, 새벽이 되어 왕의 등불은 다 꺼졌으나 노파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수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봉헌한 것이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여인의 봉헌과 빈자일등의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가 헌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봉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또한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질적 가치를 위해서 생명과 인생을 몽땅 바치는 현실에서 더더욱 봉헌이라는 것은 뭔가 반대급부를 위한 것 아니면, 부채의식에 의한 책무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부채로 알고 이를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입니다. 또는 봉헌이 하나의 법칙이 되어서 지키지 않으면 훗날 큰 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즉, 후환이 두려워서 봉헌을 한다면 이는 순수한 믿음의 동기가 아닙니다. 봉헌을 통해 행복할 수도 없고, 봉헌 자체가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운 일이 됩니다. 기쁨이 없고 감동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마음 없이 형식적으로 바치는 제물에 대해서 역겹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과의 상통이 아닐까요? 나의 영혼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실 때 뿌듯하게 찾아오는 충만함이 아닐까요? 이런 것은 물질적인 가치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늦가을의 정취가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게 합니다. 한 해의 수고를 다한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고 이제 본래 왔던 흙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무엇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렸는가?’ ‘인생의 결실은 과연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느냐가 기준이 될 듯싶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8일 연중 32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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