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너를 부르신다
헬렌 켈러는 어릴 때 열병을 앓아서 눈도 멀고, 말을 할 수도, 또 들을 수도 없는 심한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가 쓴 ‘내가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은 20세기 초에 경제대공황의 후유증으로 심한 좌절을 겪던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 사람들을 보고 싶다.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내면적인 천성까지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하겠다. 오후가 되면 오랫동안 숲 속을 산책하면서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가슴 떨리는 기적을 보고 싶다. 그리고는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으로 가서 손끝으로만 보던 조각품들을 보면서 인간이 진화해 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다. 그 날 저녁에는 영화나 연극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겠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 길에 나가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나서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 가서 공연들을 보고 싶다. 도시의 여기저기에서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눈여겨보며 그들이 어떻게 일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이 사흘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잘 보고, 듣고, 말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매일의 일상인 것들이 헬렌 켈러에게는 매우 간절한 소망이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것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다고 하니, 매일 이런 풍경들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는 우리는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헬렌 켈러, 1904 (출처 : 미국회도서관)
때로는 눈 먼 이들이 보는 사람들을 위로한다고 했는데, 헬렌 켈러의 마음이 볼 줄 아는 이들의 영적인 눈을 다시 뜨게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가 보고 싶다고 하는 모든 것들이 마치 이미 한 번 쯤은 본 것같이 표현하는 것으로 봐서는 설리반 선생이 하늘의 별과, 낮과 밤이 바뀌는 기적 같은 장면들, 박물관이나 극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는지를 매우 소상하게 전해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헬렌 켈러가 있기 까지는 설리반 선생의 위대한 헌신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소경 한 사람이 소리를 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람들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경은 굳건히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호소를 계속합니다. 예수께서 그를 불러오라고 하시자 사람들이 소경을 부르면서 말합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이 한 마디는 소경에게 인생의 암흑을 걷어내는 한 줄기의 빛이요 구원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위로를 주는 한 마디이며 생의 전환점이 되는 한 마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한 마디를 전해주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진정한 행복에 다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엔 소경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면 구걸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족들도 다 떠나고 결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 천지에 자기를 보살펴 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구걸하면서 겨우 연명하는 삶이란 이 세상에서 덤으로 있는 인생일 뿐이며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는 짐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별로 쓸모없는 삶으로 여겨진다는 것처럼 비참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런 그에게 예수께서 부르셨다는 한 마디를 전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를 만난 소경은 마침내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고 했습니다. 눈을 뜨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하고 기뻤을까요? 세상 속으로 달려가서 마음껏 그동안 누리지 못한 것들을 차지하고 싶기도 하겠지만 그는 예수를 따라 나섰다고 했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을 뜬 것입니다.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삶의 길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25일 연중 30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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