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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부자 청년

by 분당교회 2015. 10. 11.

부자 청년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생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박경리, ‘사람의 됨됨이’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박경리 선생의 위의 글 속에서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사람의 됨됨이와 마음 쓰는 곳에 있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궁기가 흐르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부자이지만 부자이기에 더 궁기가 흐르고 메마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시 행복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마음을 얼마나 넉넉하고 풍요롭게 하느냐는 것이 우리 삶의 관건인 것 같습니다. 영혼이 맑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물질의 소유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따듯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위로하고 평화롭게 합니다.


부자 청년 한 사람이 예수를 찾았습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질문을 합니다. 이 청년은 계명과 율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을 보아 가진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은 청년입니다. 세속적으로는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길거리에서 예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물어야 할 절박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요? 아마도 이 청년이 생각하기에는 재산도 지식도 어차피 소멸되어버릴 유한한 것임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더 욕심을 부려 자신의 부와 명성을 영원토록 지켜 줄 그 무엇인가를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영원토록 살지 않으면 어떤 재산도 명성도 다 헛된 것임을 알았기에,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기에 예수께 달려와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부자 청년과 예수, 프리드리히 호프만, 캔버스에 유채, 1889년.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 소장)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의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들려주신 답 때문에 이 청년은 매우 당혹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재산이 많았다는 말은 아까워하는 마음의 크기입니다. 아니면 물질에 대한 집착의 크기이자 자기 자신을 사로잡는 껍질의 두께를 의미합니다. 이 집착과 사로잡힘으로 이 청년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보다는 재물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보다는 속박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가진 재물은 많았지만 그것으로 인생을 더 풍요롭고 존경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항복의 후손으로서 한일합방 당시 조선의 10대 부자 중에 한사람으로서 지금으로 치면 2조원 상당의 전 재산을 팔아 전 가족이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하며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 만석 이상의 재산을 쌓지 말고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했던 경주 최부자. 한국 전쟁 당시 피난길에도 은행에 진 빚을 갚으면서 신의와 나눔의 본보기가 되었던 한국유리의 최태섭 회장.... 다들 재물은 많았지만 재물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그 재물로 이웃과 공동체를 풍요롭게 했던 사람들입니다. 더 귀한 가치를 위해서 자신의 재물을 선뜻 사용할 줄 알았기에 그 재물들이 더욱 가치 있게 만들었습니다. 재물은 쌓아놓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서, 그것도 선한 일에 쓰임받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자는 재물에 인생과 영혼을 사로잡힌 사람을 말합니다. 가진 것이 없고 지지리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재물에 대한 탐욕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으면 역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부자와 같습니다. 가난했던 사람이 지독하게 돈을 벌어 인색하고 궁핍하게 사는 사람들도 여럿 있으니까요.

하느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집착과 욕심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11일 연중 28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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