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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하느님이 맺어주신 짝

by 분당교회 2015. 10. 4.

하느님이 맺어주신 짝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행복을 유보하고 현재를 희생하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진 노력을 해야만 하고 행복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들은 보다 좋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행복을 유보해야 하고, 청소년들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모든 꿈과 삶을 몰아넣습니다. 행복을 대학진학 이후로 미뤄야 합니다. 그리고 그토록 꿈꾸던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치열한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비로소 안정된 직장에 간들 더욱 냉정한 생존경쟁에 시달려야 합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해도 끝없이 행복을 유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은퇴하고 난 시점에서도 마찬가지로 노후 생활을 걱정하면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왜 ‘오늘’을 행복하게 살지를 못할까요? 아마도 행복에 대한 생각이 지나치게 물질적 성취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 일 텐데 이를 무시하고 물질에서 찾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적인 대화를 통한 영적인 관계를 맺고 내면의 행복을 향유하는 삶이 계속해서 유보됩니다.


사람들은 관계 때문에 속상해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관계가 좋을 때는 많은 문제가 있어도 쉽게 해결됩니다. 하지만 관계가 나쁠 때는 항상 험악하고, 작은 일에도 예리한 칼날같은 말로 상처를 입힙니다. 때로는 작은 상처가 더 아픈 법이라 쉽게 치유되지도 않습니다.



영적인 동반자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영혼의 동반자가 있기에 함께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동반자(soulmate)는 하나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두 사람이라고 합니다. 서로를 편하게 해주고 완전에 이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서로를 살리고 의지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진정한 우정에 대해서 신영복 선생은 ‘함께 맞는 비’로 설명합니다. 비 오는 날에 친구에게 우산을 빌려주는 것보다 함께 비를 맞고 길을 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서로를 마주보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지으셔서 짝을 짓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 없습니다. 어떤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어느 나라에서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겠다고 작정하고 이 세상에 난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사람들이겠지요. 또한 우리가 만나는 사람 역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으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 먼 거북이가 나무를 만난다는 말입니다. 눈 먼 거북이가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가 백 년 만에 물 위에 오르는데 그 때 물결에 따라 떠다니는 나무에 뚫린 구멍에 거북이가 머리를 내밀어 쉰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엄청난 확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또 그 만큼 한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확률로 태어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서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아마도 더 엄청난 확률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주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는 아담이 하와를 만나자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라고 환호를 했던 것 같습니다.


높아진 이혼율, 세계 최고라고 하는 자살률, 그리고 최악의 저출산이 말해주는 대한민국의 삶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생명과 만남의 존귀함에 대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헬조선’에 살아도 따듯한 사랑이 있고 영혼이 통하는 만남이 있다면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 속에는 비목(比目)이라는 물고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눈이 한쪽밖에 없어서 두 물고기가 항상 같이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한 물고기가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딴 짓을 하면 짝이 된 물고기는 이내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어떤 길도 함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4일 연중 27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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