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승리가 아니라 섬김

by 분당교회 2015. 10. 18.

승리가 아니라 섬김


10년 전에 많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고 한국을 떠난 백발의 두 수녀가 있었습니다. 1962년 20대의 나이로 한국에 온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두 수녀는 소록도에서 43년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아왔습니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한센병은 천형의 병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은 소록도에 강제 수용된 상태였습니다. 당시에는 전염을 우려해서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격리했고 한 달에 한 번 씩 거리를 두고 멀리서 면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바람을 등지고 부모는 바람을 안고 면회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수녀는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이들의 상처를 씻어주고 고름을 닦아주었습니다. 수 천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세계에 구호를 호소했고 약품과 의료장비들을 구해 치료를 도왔습니다. 이들이 처음 소록도에 들어갔을 때 환자들은 6000명 정도였고 200여명의 아동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환자들 사이에서 계속 아이들이 태어나자 보육원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이루었습니다. 두 수녀는 (원래는 마리아라는 수녀가 함께 있었으나 이들보다 10년 먼저 귀국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공적을 일체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언론에서 수많은 인터뷰 시도가 있었으나 기자들이 온다고 하면 멀리 도망가 버렸다고 합니다. 수많은 감사패 공로패 등을 주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주는 국민 훈장 모란장도 받기를 꺼려해서 할 수 없이 정부 관계자가 소록도를 방문하여 전달했다고 합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대로 했던 것입니다. 



(왼쪽이 마가렛, 오른쪽이 마리안느 수녀 / 출처 : 천주교 소록도 성당)


그리고서는 지난 2005년 늦가을 어느 새벽에 홀연히 떠났습니다. 나이 70이 넘은 몸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고 주변에 폐를 끼치기 싫어서 고국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또한 환자들과 이를 돌보는 상황도 많이 좋아진 까닭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가져간 것은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 가지고 온 가방 하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알리지도 않고 짧은 편지 한 장 남겼습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이곳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빈다.’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엔 이별의 아픔을 덜기 위해서 몰래 떠났다고 합니다. 떠나는 배에서 소록도에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눈 감으면 그동안 살았던 집과 병원 그리고 푸른 바다가 눈에 선하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평생을 두고 한 헌신과 봉사는 우리 신앙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드러내기를 바라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이들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겼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으뜸으로 여겨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몫을 다 차지 한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 받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섬김의 상징입니다. 그 섬김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십니다. 그 십자가를 따르는 이들이 역사를 선한 방향으로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을 확장해 왔습니다.


섬김 없는 지도자들이 역사의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권력을 섬김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뜻을 섬기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국민들에게 관철시키려 합니다. 지도자들이, 높은 사람들이 낮고 약하고 작은 사람들을 섬길 때 진정한 섬김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급자들이 상사들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진실성이 의심받을 때가 있습니다. 왕이 백성을, 목회자들이 신자들을, 그룹 회장이 직원들을, 교사가 학생을, 부모가 아이들을 진심으로 섬길 때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 감동으로 세상은 따듯해지고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높은 자리를 탐했습니다. 승자의 자리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바보들아, 승리가 아니고 섬김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약자들, 낯선 자들을 환대하고 섬기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귀중한 신자들의 덕목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18일 연중 29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말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국의 소망  (0) 2015.11.01
그 분이 너를 부르신다.  (0) 2015.10.25
부자 청년  (0) 2015.10.11
하느님이 맺어주신 짝  (0) 2015.10.04
귀향  (0) 2015.09.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