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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신발 끈 풀어 드릴 자격

by 분당교회 2015. 12. 13.

신발 끈 풀어 드릴 자격


인간(human)이라는 말의 어원은 겸손(humility)라는 말과 같은 흙(humus)에서 왔다고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모든 인간은 겸손 할 수밖에 없으며 겸손해야만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흙은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모든 사람들, 동물들, 식물들, 물건들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고 또 그 위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 번도 자기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딛고 살게 할 뿐입니다. 이것이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 겸손한 사람의 넓은 인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겸손한 삶이란 마치 대지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뜻합니다. 흙 중에서도 더러운 것들을 많이 받아들인 흙을 기름진 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도 자기 마음에 드는 말이나 행동만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남의 괴로움과 슬픔도 받아주고 씻어 줄 수 있을 때 기름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복음서에 표현된 것으로만 보기에는 매우 강직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광야에서 청빈하게 살면서 고독과 싸우며 수련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지간해서는 말도 못 붙일 것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람들 앞에서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당당하게 회개하라고 외치며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면 대쪽 같은 인격의 소유자로 보입니다. 강한 도덕성의 소유자들이 남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상상하기가 어려운 데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 앞에서는 절대적인 겸손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신발 끈을 매고 풀을 때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만 합니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행동으로 그렇게 숙일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자기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마음속에서는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때로는 위대한 사람, 마음으로 깊이 존경하는 사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신발 끈을 풀어드리는 것 자체를 영광이요 기쁨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신발 끈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니 메시아에 대한 경외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절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을 세례자 요한이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두려움과 기다림으로 맞이할 때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면서 극진히 접대합니다. 본인의 치장뿐만 아니라 온 동네의 분위기를 바꾸어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드러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오셔서 머무를 자리를 얼마나 마련하시는지요. 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기밖에 모르며 잘 난 척 하기도 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는지요.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불안감이 있고 걱정이 있고 두려움이 있다면 하느님과 함께 있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성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혜에 기댈 수밖에 없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그 믿음이 식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겸손은 모든 인간의 스승 중의 스승이며 인간의 품위를 높여주는 덕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옷이 있다면 그것은 겸손이라는 옷입니다. 높은 자리를 향해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쳐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무거운 희생의 짐을 이웃에게 얹혀주어야 하는 비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시는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높은 보좌에 머무르지만 않으시고 비천한 마구간으로 내려오신 주님을 맞이하려면 우리 스스로 낮아져야 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 죄인들에 의해서 순한 양처럼 끌려가 죽으심을 배우는 것입니다. 

겸손으로 준비한 사람만이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2월 13일 대림 3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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