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년 5월 14일 부활 5주일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요한 14:1-10
걱정하지 마라
1. 유언장을 작성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요한복음 13장에서 16장까지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유언의 말씀들입니다. 유언이란 꼭 남기고 싶은 말입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말은 13장에 나오는 새 계명입니다.
“34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유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을 새기고 실천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2. 오늘 읽은 복음은 예수님의 유언의 일부이지요. 이 시간 잠시 침묵하며 여러분 각자에게 와 닿은 주님의 유언은 어떤 말씀인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드리겠습니다. (2분 묵상과 2분 정도 나눔)
3. 지난 한 주간 설교를 준비하려고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게 제일 와 닿는 말씀은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제 안에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을 다녀왔는데, 의사가 대학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수술하라는 한 것입니다. 둘째 아이나 저희 부부나 많이 놀랐습니다. 곧 바로 대학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일단은 3개월 정도 지켜보자 하여 한 고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4. 기도하려고 이 성전에 앉으면 마음에 걱정아닌듯 걱정인듯 여러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대부분 교회에 대한 것들이죠. 아프신 교우들, 예배에 나오지 않는 교우들, 교회 살림살이, 교회의 이런 저런 사안들, 선교와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5. 걱정 없이 사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 걱정, 돈 걱정, 건강 걱정, 미래에 대한 걱정, 또 어떤? 이런 걱정 저런 걱정으로 삶이 많이 흔들립니다. 이런 우리 인생들에게 오늘 주님은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6.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의 처지를 헤아려 봐도 그렇습니다. 13장을 보니 예수님이 자꾸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21절,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33절,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뿐이다. 36절, 지금은 내가 가는 곳을 따라 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38절,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새벽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7. 이미 3번이나 수난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이 이제 곧 자신이 죽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모든 것을 걸고 따랐던 스승이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렇게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이런 제자들에게 오늘 주님은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8.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은 걱정하지 않을 수 말아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이어 말씀하십니다. 1절 후반부,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여기서 ‘하느님’ ‘나’는 동어반복입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보았으면 하느님을 본 것이라고 하십니다.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이 하느님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하느님이니 너희는 걱정할 것 없다.” “내가 하느님이다. 내가 너희를 보호하고 인도한다. 나를 믿어라.” 아멘?
9. 그러면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어떤 삶의 태도나 반응을 의미하는 걸까요? 오늘 서신에서 베드로 사도는 믿음을 “주님께로 가까이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강력한 설교를 하고 있는 히브리서에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12:2,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10. 사람은 자신이 보는 것이 마음에 담깁니다. 마음에 담긴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런 걱정, 저런 걱정에 흔들리는 인생 여정에서 그 걱정거리를 바라보면 낙심하고 한숨짓게 됩니다.
11. 하지만, 하느님을 바라보면 그 분이 내 마음의 중심에 주님이 좌정하시고 내 삶을 다스리시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거센 풍랑이 이는 사나운 물결이라도 주님과 함께 통과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떼제 찬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사랑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따라서 불러 보세요.
12.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걱정하지 마라” 말에서 ‘걱정하다’는 단어가 요한복음 안에 3번 더 사용되는데, 그 사용되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비장한 마음이 보입니다.
11:33,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He was deeply moved in spirit and troubled.
12:27,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주소서.' 하고 기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온 것이다.
Now my heart is troubled, and what shall I say?'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몹시 번민하시며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하고 내놓고 말씀하셨다.
After he had said this, Jesus was troubled in spirit and testified,
13. 이 세 곳에서 “걱정하다”는 단어는 모두 죽음의 세력과 그것의 영향력에 고통을 받고 있는 예수 자신에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슬픔이나 어떤 형태의 감상적인 생각을 표현하기보다는, 죽음의 세력이 인간에게 가하는 불안과 혼란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반영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4.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시면서 자신에게 엄청난 고뇌를 안겨주었던 죽음의 세력에 직면할 준비를 갖추도록 제자들을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2절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2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3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아버지 집에 있을 곳, 너희가 있을 곳, 이라는 말에서 ‘곳’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rooms입니다. 방이란 쉬고 안식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죽은 후에 안식을 누릴 곳을 마련하러 가신다는 말입니다.
15.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란 안식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면 걱정거리가 밀물처럼 몰려오는 이 세상에서 평화를 누립니다. 죽어서는 주님 품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평화와 안식이 구원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을 주시는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만 믿으십시오.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16. 제자들 곁을 떠나가는 것,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이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를 결코 떼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맞이하는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궁극적인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서 확증된 영원한 생명과 재림의 약속이 우리의 믿음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함께 힘차게 선포해 봅시다.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17. 하루살이와 메뚜기, 개구리의 우화가 있습니다. 하루살이와 함께 하루를 재미있게 지낸 메뚜기가 ‘내일 만나’ 하고 인사하자, 하루살이가 ‘내일이 뭐야?’ 묻습니다. 심심해진 메뚜기가 개구리를 만나 여름과 가을을 재미있게 지냈는데 겨울이 왔습니다.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겨울잠 푹 자고 내년에 만나’ 인사합니다. 그러자 메뚜기가 ‘내년이 뭐야?’하고 묻습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지만, 내일은 있습니다. 메뚜기가 내년을 몰라도 내년이 있습니다. 이렇듯이 영원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토록 우리에게 허락된 축복입니다.
18.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는 죽음 이후에 들어가 쉴 곳 아버지 집이 있음을 압니다. 주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믿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이 소개하고 있는 기독교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복음을 선포하고 자신들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이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스테파노 이후, 초대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 또한 이 믿음으로 죽음 앞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19. 교우 여러분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음 앞에서 그리고 죽음의 문화가 깊게 드리운 이 세상 속에서 당당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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