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8일 연중 27주일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태오 21:33-46
하느님의 비전을 이루라!
0. 추석명절 잘 쉬셨지요? 정연복 시인의 “가을”이라는 좋은 시가 있어 읽어드립니다.
“하늘 저리도 높은데 / 가을은 벌써 깊다
말없이 / 자랑도 없이
나뭇잎마다 / 단풍이나 곱게 물들이면서
하루하루 가만가만 / 깊어 가는 가을.
아! / 나는 얼마나 깊은가
나의 생도 /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가.“
1. 오늘 1독서 본문이 십계명이어서 ‘죄의 고백’ 대신 십계명을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계명이 하나 추가되어 11계명까지 있다고 합니다. 11계명이 뭔지 아세요? “십계명을 다 어기고도 들키지 마라!”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아니 말씀대로 살지 않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풍자한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2. 십계명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얼마 전까지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입니다. 이집트의 황제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의 우상들을 섬기던 노예들입니다. 그저 배만 부르게 먹을 것만 주면, 시키는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예들입니다. 그 노예근성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아시는 대로 출애굽 1세대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히브리인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3. 하느님이 히브리인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 나와 있습니다. 19:5-6, “5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온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냐? 6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 줄 말이다."
4. “사제직”이란 하느님과 세상을 화해시키는 중재자입니다. 온 세상을 하느님과 화해하게 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어가는 구체적인 방법은 이스라엘이 온전히 하느님만을 섬기며 축복을 받는 하느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모든 열방에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5. 이것은 히브리 노예들이 홍해를 건너고 50여일 지나 시나이 산에 도착했을 때 받은 비전입니다. 이 비전을 주신 하느님이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비전과 십계명을 받은 히브리인들은 시나이산에서 1년 가까이 머뭅니다. 일종의 말씀수련회를 갖은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야훼 하느님을 알아가고, 하느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을 만들어, 하느님만을 예배하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되는 시간입니다. 반이집트, 반파라오라는 공감대로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이 하느님의 비전과 10계명을 받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6. 십계명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 히브리인들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하느님 나라 법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살펴보면 “하라”라는 주체적인 명령보다,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1,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2, 모양을 본 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3,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4, 안식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5,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못한다. 7, 간금하지 못한다. 8, 도둑질하지 못한다. 9,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7. 아직은 스스로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행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황금률로 정리해 주셨듯이, 십계명에는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인생들이 살아가야 하는 방향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1-4 : 하느님 사랑, 5-10 : 이웃사랑.
8. 하느님의 계시는 이후로 더 확장됩니다. 모세오경이라고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느님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의 원리가 담긴 말씀들이 제시됩니다. 레위기에서 희년법을 살펴보았듯이, 하느님 나라의 원리는 사법적 정의인 미슈파트, 분배적 정의인 제테크,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인 헤세드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샬롬의 왕국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9. 이 비전은 일찍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하느님의 마음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8장 19절에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개역성경으로 읽어드립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 “의와 공도”가 바로 미슈파트, 쩨데크입니다.
10.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절대 권력인 황제가 신으로 숭배 받는 국가노예제 체제인 고대근동국가들을 따라 우상을 섬기며 하느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공평과 정의를 버렸습니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느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외침도 “회개와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마르코 1:14-15,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 교회를 세우시고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11. 오늘 복음,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가 바로 이 내용입니다. 복음서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지주는 하느님입니다. 포도원은 하느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처음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입니다. 도조는 바로 미슈파트와 쩨데크입니다. 이스라엘이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루어지는 의와 공도, 정의와 공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도조를 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종들을 죽입니다. 종들은 예언자들을 말합니다. 예언자들은 의와 공도를 행하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지주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들까지도 죽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12. 지주는 도조를 낼 다른 소작인에게 포도원을 맡깁니다. 43절,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도조를 잘 내는 다른 소작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들로 새 이스라엘입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13.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교회에게 주신 지상명령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에게 주신 비전 그대로 입니다. 마태오 28:18-20. “18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14.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출애굽기 19장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직책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15. 어떻게 하면 도조를 잘 내는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실패한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출애굽의 은총,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느님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노예에서 구원하여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야훼의 은총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믿음이 요청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도 바울로를 모본으로 삼도록 오늘 2독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6. 바울로는 세속적인 면에서 보면,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혈통이 베냐민 지파입니다. 사울 왕이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왕족이라는 말입니다. 할례 받은 히브리인으로 열심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던 바리사이파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3절을 보면, 가말리엘 출신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기준으로 이해하자면, 최고의 스펙을 지닌 사람이 바울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로는 이 모든 것을 장애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쓰레기로 여긴다고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고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예수님처럼 살기만을 원한다고 합니다.
17. 그의 고백을 다시 들어봅시다. 다 눈을 감고 들어보십시오.
필립 3:7-11, “7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내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입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11 그러다가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18 이 고백을 드린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세우는 사도가 되어 하느님의 비전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서로 사랑함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확장해 가는 주님의 교회를 이루기를 축복합니다.
19. 사도 바울로가 이런 고백과 삶의 목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 삶의 뿌리가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에 깊게 박혀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도록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20.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 예수님을 기억한다는 말은 나를 하느님의 자녀로 구원하기 위한 거룩한 희생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나도 희생하고 섬기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결단한다는 것입니다.
21. 오늘 성찬에 임하실 때, 사도 바울로의 고백을 기도로 올려드리며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사랑이 부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의와 공도를 행하는 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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