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설교] 세례자 요한의 출생 _ 루가 1:57~66, 80

by 푸드라이터 2007. 7. 9.
예수님을 따라 걷는 하느님 나라의 길(루가 1:57-66,80)

7월 1일(연중 13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세주)이심을 믿는 이들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시(啓示)이지만 그 계시는 단지 머리로만 인지하면 되는 무슨 ‘정보’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그 계시에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마르9:7)”는 명령이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계시의 명제는 반드시 믿는 이들의 ‘고백’과 ‘추종(追從)’이라는 실제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루가복음은 우리 고백의 내용과 추종의 동기에 대하여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의 “저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는 다짐은 대단한 것이지만 정말로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 조차 없다”는 것, 예수님께서는 현세의 부귀와 출세와 권세를 보장해주시는 그런 그리스도가 아니시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서 한 다짐일까요? 우리는 종교를 통하여 현세의 평안(平安)과 발복(發福)을 기원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분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러면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고 약속하십니다.

어떤 이는 “나를 따라 오너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하여 죽음에 관한 써비스(Service)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의 인생이고 실로 죽음은 삶과 하나여서 믿음의 삶이 곧 행복한 죽음을 보장해주고, 믿음 안에서 맞는 죽음이 곧 영원한 삶이라는 진리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중요한 소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 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는 합니다. 참으로 인간적인 이 요청에 대하여 예수님은 단호히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여러가지 인간관계가 우리를 규정합니다. 가족, 가문, 지연, 학연, 직장, 사회, 국가...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참된 정체성은 ‘하느님 나라’로 말미암아 깊어지고 새로워집니다. 진실로 그것이 가장 참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뒤따르는 우리의 동기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수님 추종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곧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 믿음의 동기는 우리의 삶, 가정, 교회, 우리나라와 이 지구 세계가 온전히 ‘하느님 나라’에 속하게 되는 것! 그 꿈, 그 일로 인한 기쁨과 행복과 보람입니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