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5일
성탄 2주일 주의공현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성공회 분당교회 관할사제)
새해 첫 주일입니다. 새 해에도 주님과 동행하시며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주일예배는 ‘주의 공현일’로 지킵니다. 교회력으로는 내일 1월 6일인데 주일로 옮겨 지킬 수 있어, 오늘 예배 의향으로 합니다.
공현은 ‘신성(神性)의 드러남, 나타냄’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음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동방박사의 방문과 경배로 아기 예수님은 장차 유대인의 왕, 평화의 왕, 구세주가 되실 분이심이 알려집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일, 첫 제자들을 부르신 일, 가나에서 혼인잔치 기적을 베푸신 일, 변화산에서 신비한 변모를 보이신 사건으로 예수님의 신성은 세상에 널리 드러납니다. 사람들을 향한 지극한 연민과 거룩한 선행이 예수님을 통해서 펼쳐집니다.
복음서를 보면, 아기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드러나신 사건이 마태오와 루가가 다릅니다. 루가는 목자들, 마태오는 동방박사입니다. 루가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여기는 관점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고, 마태오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기록된 것입니다.
작년에는 주일마다 루가복음을 읽어오면서 루가를 통해 드러나는 복음의 관점을 배웠습니다. 올 해는 마태복음을 읽어가면서, 주님을 더 깊이 만나가고 신앙이 성숙해 가기를 바랍니다.
마태오복음의 관점대로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다는 말은, 예수를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를 믿는 자들은 이 땅의 왕과 왕국의 질서와 가치를 거부하고 하느님만을 왕으로 섬기고 예배하며, 하느님 나라의 가치로 살아가는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실제 초대교회 신자들은 당대 신으로 숭배 받던 절대 권력자인 로마 황제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섬겼습니다. 팍스 로마나의 가치를 거부하고 교회로 모여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 나라를 경험했고 그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공현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고 선교입니다.
오늘 읽은 서신 말씀을 묵상하며 동일한 기대로 이 시대의 교회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에페소서 3장 7절을 이렇게 읽어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을 받고 우리 가운데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총에 감사하며 성령님을 더욱 의지할 때 이 시대, 이 도시 가운데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공현의 공동체로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하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기대대로 힘차게 전진하는 2020년이 됩시다.
이사야 60: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성공회는 주교제교회로서 지역의 관할사제는 주교님을 대신하여 사목하는 대리자입니다. 하여 오늘 새 해 첫 날 주교님의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대신 전합니다. 2020년 서울교구장 주교 신년 사목교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 주님의 제자, 세상을 위한 교회 -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신자 여러분!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올 해는 대한성공회 선교 1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30년 전 고요한(John Corfe) 주교와 그의 일행은 ‘하느님에게 먼 곳은 없다’(Nihil longe est Deo)는 신념을 가지고 영국에서 한국으로 멀고 먼 뱃길을 왔습니다. 부족한 선교자금에 개의치 않고 ‘나룻배 한 척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나섰습니다.
그들은 풍토병에 시달리기도 하고 낯선 언어와 음식과 문화에 적응하면서 교회와 학교를 세웠고, 병원과 고아원을 만들어 봉사했습니다. 참으로 존경할만한 ‘위대한 도전’이자 불꽃같은 헌신이었습니다. 대한성공회가 이들의 열정과 선교 정신이 씨앗이 되어 성장해 왔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초기 선교사들을 맞이한 우리 조상들은 그들의 낯선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신앙의 씨앗을 키웠습니다. 전혀 다른 인생관과 세계관이었지만, 변화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50리 10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성당에 가 주일감사성찬예배를 정성으로 봉헌했습니다.
땅과 집을 봉헌하였고 신앙과 양심에 따라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성직자 없는 교회를 지키며 쓸고 닦고, 촛불을 밝혀 기도하고 이웃에게 교리를 가르친 전도사와 전도부인, 그리고 신자회장들이 있었습니다. 대한성공회의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은 이분들의 신앙을 바탕으로 성장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한성공회는 크지는 않지만 이처럼 빛나는 유산을 간직하고 있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나눔과 섬김을 위해 노력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제가 주교로 승좌한 후, 지난 2년 동안 변화와 성장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신자에서 제자로!’라는 표어 아래, 제자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첫 해에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결단을 촉구하였고, 둘째 해에는 공동체적 신앙의 성숙과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건강한 교회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올해의 교구 표어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마태오복음의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제자화 운동 3년차로서 모든 신자와 성직자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고 달란트를 봉헌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참 제자가 되는 해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비판하고 걱정합니다. 일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타인들에 대해 공격적인 교회의 행태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가를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촛불은 자신을 태우며 빛과 열을 냅니다. 소금도 자신을 녹이며 맛을 냅니다. 우리가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하고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아닙니다. 각자가 소박하고 작은 일에 충성할 때, 그 마음과 힘이 모여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한 가닥의 촛불이 우주의 어둠을 삼킨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칠흑같이 어둡고 악의 권세가 강고하다 하더라도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실한 기도와 정성과 헌신을 하느님께서는 귀하여 여기실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많이 힘들고 어둡습니다. 물질의 소유와 소비라고 하는 경제문제에 몰입하다보니 일생을 경쟁 속에 살아가게 되고 영성은 피폐해져서 참다운 행복과 사랑을 체험하기가 어렵습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고 자녀를 양육하기 어려우면 결혼을 기피하고 자녀를 낳기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자살률 세계 정상이라는 비극적인 타이틀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생 자녀를 양육하며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어르신들은 준비되지 않은 노년의 삶이 두렵기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노동 속에서 여전히 생명을 위협받고,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해 일가족이 자살하는 비극이 아직도 빈번합니다. 이 모든 것의 이유가 우리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물질이 부족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정의롭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서로가 존중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둠이고 맛 잃은, 기쁨 없는 세상의 단면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욱 빛납니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크고 화려한 궁전이 되기를 바라기보다 아름다운 별처럼 빛을 간직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에페 5:8) 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 안에서 하느님에 의해서만 존재합니다. 교회는 살맛을 잃은 사람들에게 살맛을 되찾아 주어야 합니다. 교인들은 각박한 세상에서 작은 소망을 이웃과 나누고 기쁨의 꽃을 피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올해 일 년 동안 이웃을 위한 봉사를 추진하고, 모든 교인들은 일상생활에서 교회에서든 일반 사회에서든 하나의 봉사를 정해서 묵묵히 실천해 나가길 권유합니다.
무릇 건강한 교회가 참다운 제자를 양육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순수한 신앙과 열정을 가진 신자들이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갑니다.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면 결코 빛과 소금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신앙공동체가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면서 함께 실천할 때 그 가치와 의미는 몇 배 커질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건강한 교회 문화가 형성될 때 만들어집니다. 좋은 문화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개인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협력해서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쁜 문화는 소수의 사람들이 불만과 불평을 하며 비관적인 생각을 퍼뜨리는 가운데 쉽게 형성됩니다.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익숙해지면 교회는 근본부터 무너져 내립니다.
개인이 아무리 충실하다 하더라도 공동체의 문화가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는 그 본질을 상실하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에서는 서로 환대하고 존중하며, 복음의 가치를 나누는 대화의 꽃을 피우는 기풍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가족적인 우애와 친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전통이지만 자칫 폐쇄적인 분위기로 변질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늘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합니다.
배움에 길이 있습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참 제자로 성장합니다. 교육에 참여함으로서 성서의 진리를 깨우치고 교회의 역사와 가르침을 습득하여 신자가 갖추어야 할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참다운 교육은 세상 속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내세우기보다 하느님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그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주입보다는 영적인 깨달음과 신앙적 판단력을 형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자, 피교육자 모두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번번이 교육이 실패하고 성과가 없습니다. 성직자는 모든 신자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자이며 달란트를 식별하는 막중한 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성직자도 신자들의 경험과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신자들 상호 간에 영적인 체험을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 배우려는 교회의 풍토야말로 건강한 교회의 든든한 밑받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전례적인 교회로써 품격 있는 예배를 드리고, 성공회의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이 살아있는 가운데 건강한 기풍과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그런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성직자, 수도자, 신자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는 저에게 주교 사목을 함께 수행하는 소중한 지체이며 협력자들입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화합과 일치를 위해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서울교구는 여러 갈등과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느라 참으로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이제 선교 130주년을 기점으로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희망찬 미래를 함께 열어가기를 희망합니다. 어둠은 어둠의 방식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차가운 겨울의 동토는 더 강한 바람으로 부서지지 않고 부드럽고 따듯한 봄바람으로 녹여지는 법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위한 교회로 거듭 태어나는 은총의 해가 되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 이경호 베드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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