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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주님이 디자인하신 가정!

by 분당교회 2020. 5. 3.

2020년 5월 3일 부활 4주일

가정 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요한 10:1-10

두 달 만에, 여러분과 함께 현장 예배를 드리니 뭉클합니다. 사회적 거리 지키기 등 방역지침을 지켜야 해서 예배를 2회로 분리해서 드리고, 몸이 아프시거나 면역력이 약하신 교우들은 현장예배에 못 오시니, 공동체 전체가 함께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배드리게 됨은 방역을 위해 헌신하신 의료진과 공무원, 그리고 국민 모두의 덕분입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성공회분당교회 창립 21주년이 되는 주일을 보내고 맞이한 지난 주 중에는 본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셨던 교우들의 기념일들이 많았습니다. 4월 28일 화요일은 故김웅호(안토니오)님의 생신이셨고 4월 29일은 故송준영(그레고리)우님의 생신이었습니다. 연이어 생신을 맞이하신 두 분은 지금 서울주교좌성당 납골당에 나란히 안치되어 계십니다. 많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또 사월초파일 4월 30일은 교회 총무로 헌신하셨던 故지금식(안드레)님 5주기였습니다. 지안드레님은 제가 모르는 분이시지만, 당시 함께 지내셨던 교우들은 애틋하게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분당교회에 예수님이 잠시 다녀가신 것 같다”는 기록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천국에서 만날 그날을 소망하며, 세 분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고 설교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영원하신 주 하느님, 모든 사람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사랑하는 故송준영 그레고리, 故김웅호안토니오, 故지금식안드레 교우의 영혼을 위하여 드리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주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시고, 주님만을 믿고 의지한 우리들도 마지막 날 주안에서 그들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2-3-4월 코로나 난국을 지내다 보니 어느덧 가정의 달 5월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 중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어 오늘 예배 의향를 가정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자녀들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성당에 오지 못하는 자녀들에게는 우편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10장 10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에 ‘생명을 얻고’ 무엇을 의미하고, ‘더 얻어 풍성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을 믿게 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보다 더 의미있고 보람있는 존귀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교회와 가정을 통해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가정주일로 예배드리는 오늘, “주님이 기대하시는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많이 들어보신 제목이죠? 지난주일, 교회창립 21주년 기념주일에 말씀드린 설교 제목,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와 같습니다. 교회와 가정 모두 하느님의 나라를 누리도록, 주님이 직접 세우신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사도행전 2장 42절의 말씀으로 3가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3가지가 뭐였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수하는 공동체! 성령의 코이노니아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드러내는 공동체! 삶이 회복되는 하느님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공동체!“ 

 

교회가 가정이나 이 3가지가 이루어질 때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를 가정에는 어떻게 적용될까요?

 

1.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 “하느님 나라 복음을 전수하는 공동체”

가정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 복음이 전수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란 하느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통치 개념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통치하시기에 존재 자체가 꽃 피는, 구체적으로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져 샬롬이 넘치는 상태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가정은 바로 이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는 곳이어야 하고, 자녀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비전과 가치가 전수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챤 부모들은 이와 다르게 행동합니다. 주일에 자녀들을 교회에 데려와서 주일학교에 맡기면 복음 전수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가 되어 교회가 아닌 학원으로 독서실로 가게 됩니다. 이후 그 어디서도 복음의 전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거의 하느님을 떠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절기 때 예배에 오는 것은 문화적인 현상일 뿐이죠. 

 

가정이 하느님 나라 복음을 전수하는 현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해서입니다. 주님은 가정을 통해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갈까”를 기도하며, 주님이 주시는 비전으로 자라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정과 교회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교회를 통해 부모가 하느님 나라의 복음으로 세워지면서, 그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선순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녀 양육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보 2면입니다. “사랑의 하느님, 우리를 축복하시어 자녀를 돌보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온화함과 인내하는 지혜로 (   )를 양육하게 하소서.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게 하시고 정의와 진리와 선을 사랑하도록 가르치게 하소서.”

 

2. 서도 도와주고 - 성령의 코이노니아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드러내는 공동체! 

오늘 시편이 바로 이런 행복한 가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의 집 안방의 네 아내는 포도알 푸짐한 포도나무 같고 밥상에 둘러앉은 네 자식들은 올리브 나무의 햇순과 같구나.” 우리 교회의 모든 가정이 이런 행복을 누리는 가정, 천국을 누리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넘치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가족들의 친교가 더 깊어져 하느님 나라를 누리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부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 부부가 서로의 입술이 되게 하소서.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낙심할 때 주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서로에게 고백하게 하소서. / 주님, 우리 부부가 서로의 손이 되게 하소서. 차가운 세상에서 온 몸이 떨릴 때 서로 감싸 안는 온기가 되게 하소서. / 주님, 우리 부부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소서. 살아가며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했을 때 사랑으로 이해하고 동행하게 하소서. / 주님, 우리 부부가 언제라도 하나 된 입과 손과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그런데 현대에는 가족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혼밥 혼술이라는 말이 보편적이듯이, 싱글가정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내면에는 깊은 교제를 갈망하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이단들이 현대인, 특히 젊은이들의 이런 내면을 만져주기 때문에 성장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인데 교회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수많은 영혼들이 이단들에게 노략당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코이노니아라는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가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소그룹이 하늘 가족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지난 주 중, 교우님과 대화하던 중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교우가 단골로 다니시는 미용실의 사장님이 다니시는 교회는 누가 병원에 입원하면, 목회자가 심방하는 것은 기본이고 구역장, 구역식구, 장로님 등이 심방 와서 기도해 주고, 부조도 하고 또 간병인을 구하기 힘들면 간호까지 해주며 서로 돌봐준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성공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거구나’ 생각하셨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들이 성령의 코이노니아로 하느님 나라를 누리고 세상에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 빵을 떼고 기도에 전념 – 예배드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인정하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며 하느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특별히 가정 예배는 함께 찬양하고 말씀 묵상을 나누며 대화하고 기도 제목을 나누는 가운데, 삶을 공유하는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는 현장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자녀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가 가장 좋은 신앙 훈련입니다. 사순절이나 대림절에 가정예배 드리는 연습을 해 왔는데, 주 1회 정도는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함으로, 신앙의 전수와 코이노니아의 은총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4. 누가?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으로 질문이 던져 집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 주님이 기대하시는 가정!”을 누가 세워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복음 바로 다음 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교회의 머리되시고, 가정의 주인이 되시어, 주님의 양인 우리를 풍성한 생명의 삶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분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이런 대리자를 영적 아비, 영적 부모라고 합니다. 교회에 세우신 예수님의 대리자는 주교입니다. 사제는 주교의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지역교회를 섬기는 사제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대리자로 역할하게 됩니다. 사제를 파더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예수님의 대리자가 되는 것이죠. 

 

안타까운 것은 사제들이나 부모나 다 주님의 대리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대원을 나오고 서품을 받았다고 다 사제가 아니듯이, 아이를 낳고 기른다고 다 부모가 아닌 것이죠. 

 

목자이신 예수님의 대리자로 역할을 다하는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영적인 부모가 되지 못한 사제가 있어 교회가 깨지고, 그저 육적인 부모인 경우가  많아서 가정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제가 읽었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브랜드를 구축하는 유일한 방법은 브랜드에 맞게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창한 의미를 사고 싶고, 브랜드는 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사제를 비롯한 교회의 섬김이들이, 또 부모들이 하느님 나라 복음으로 거듭나서  교회와 가정을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는 공동체로 세워가는 예배자로 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제와 교회의 섬김이들, 부모들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를 따르는 양들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 10:4, “이렇게 양떼를 불러낸 다음에 목자는 앞장서 간다. 양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간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사도 바울로의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오늘 서신은 이렇게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벧전 2:21,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주셨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아이들이 우리 부모의 언행심사를 보며 자라나 나중에 아이들을 보면, 못난 내가 보여 괴롭다고 합니다. 신자들도 사제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는 것이기에, 사제인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사도 바울로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삽니다. 

 

성령강림주일까지 “기쁨의 50일”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 부활절기 동안, 여러분 모두 더욱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에 정진함으로, 영적인 부모로 성장해 가며, 우리 교회와 가정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우리는 세상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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