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7일 부활 6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요한 14:15-26
이태원 클럽 발 감염 확산으로 걱정 많이 했는데, 역시 방역당국이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다시 한 번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 지난 목요일 KBS에서 최재천 교수님의 특강이 있어, 들어 보았습니다. 좋은 강의여서 간단하게 몇 가지 내용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최교수님은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는 백신이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화학백신입니다. 하지만 화학백신에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고 합니다. 백신을 개발하는 데만도 1~3년은 족히 걸리고 개발해도 효율성을 검증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백신이 정답이라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 엄청난 피해를 다 겪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행동백신입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말합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에게 옮겨가지 못하게 차단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한 나라입니다. 셋째는 생태백신입니다. 생태백신은 우리가 자연을 덜 건드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한에서 박쥐나 천산갑을 안 건드렸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을 채우고자 파괴하고 개발하는 일이 계속되는 한 바이러스 감염 사태는 계속 발생할 것이고 그 주기가 빨라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 누구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태백신을 만들어가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느님의 주신 피조세계의 질서를 잘 지켜가는 것입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화학백신이 나오기까지 함께 가야하는 것이기에, 행동백신을 잘 지키며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도 당분간 이런 상태로 지내게 될 것 같습니다. 예배는 분리되어 전체가 모이기 힘들고 또 소그룹 활동이 쉽지 않은 시기에 교회의 본질인 코이노니아를 회복해 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도 지난 주일에 이어 예수님의 유언을 듣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마음에 담긴 말씀은 14장 15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지난 한 주간 묵상하며, 이런 질문들이 생각났습니다. “내 계명’은 뭐지? 왜 예수님은 자신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지? 나는 그것을 잘 지키고 있나? 잘 지키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살 수 있을까?”
1. ‘내 계명’, 즉 예수님의 계명이란 요한 13장 34절에서 말씀하신 새 계명을 말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십계명도 있고 613가지의 율법조항들이 있는데,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이 한 말씀을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2. 이 계명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이 계명대로 살아갈 때 큰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4가지입니다.
1) 서로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여기서 ‘서로’란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바로 교회이지요. 지난 두 주, 설교를 통해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성령의 코이노니아로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서로 사랑 공동체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축복인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인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입니다.
2) 서로 사랑하면서 주님을 닮게 됩니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진다는 말이 있듯이, 교회에 모여 서로 사랑하기를 경험하고 배우며 훈련하면 변화됩니다. 인격이 성숙해지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은 최종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에페 4:13,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 그리스도의 완전성!
로완 윌리암스 주교님이 쓰신 신앙의 기초 시리즈가 있는데 제목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제자가 된다는 것-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다른 두 인격이 하나가 되어 환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늘에서 오는 평화와 기쁨을 맛보고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하느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형제(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느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 14:21,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
4)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를 확장합니다.
지상 첫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서로 도와주는 사랑의 공동체로 살았더니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2:47,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오늘 서신에서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합니다. 벧전 3:15,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세상과 다르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존경하게 됩니다. 그런 공동체에 함께 하고 싶어집니다. 서로 사랑 공동체가 선교의 시작이고 완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계명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예수님의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며 살면, 새로운 가족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삶의 안정감과 행복을 누리고, 인격이 자나라며, 서로 통해 하느님을 경험하면서 하느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3. 그런데 문제는 내가 사랑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사랑의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18장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18:21,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주님이 뭐라고 대답하셨죠?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내 안에 이 사랑이 없습니다. 나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이런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은 새 계명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 나를 따라 해보면 될꺼야!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지요? 지난 금요일 복음이 기억납니다. 요한 15:12-13, “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13.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믿음은 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깨달을 때 내 안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솟아납니다.
진실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 그런데 주님을 향한 사람이 자꾸만 식습니다. 성체와 보혈을 영하며 감격했던 감사는 사라지고 형식적으로 의무감으로 예배 합니다. 아!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내 안에 가득 간직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16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는 15절이 성취되는 삶을 위하여, 16절의 “다른 협조자”가 필요합니다.
‘협조자’라고 번역된 파라클레토스는 변호자, 돕는자, 위로자, 진리의 영으로서 제자들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우쳐 주며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도와주실 ‘다른 예수’, another Christ이신 성령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6장에 7절을 보면, 예수님이 협조자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느님으로 완전한 사람이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셨습니다. 여기 나와 계시면 저기 너와 같이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어느 때이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그를 의지하는 자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언제 어디서든 신자를 도우시려고 내 안에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5. 제가 25여년 사목을 하면서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임재 안에 침묵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는 사랑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로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묵상과 기도로 주님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 것입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공동체로 살아가야 하는 수도자들은 하루 일곱 번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지체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의 전통이 우리 성공회 안에는 하루 3번 기도로 전승되었습니다. 삼종기도라고 하지요. 교회 안에 삼종기도의 전통이 있는 이유는 교회가 서로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향심기도 훈련에서는 20분씩 두 번 침묵기도 하는 것을 권합니다. 최소한 이 정도는 기도해야,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친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른 아침 일어나자마자 말씀을 묵상하고 20분 향심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늦은 오후나 저녁 식사 후에 향심기도를 드립니다. 사목을 하면 할수록 이 기도가 더 절실합니다.
사제인 저야 제 생활의 대부분 교회 울타리 안에 있지만, 여러분은 세속과 정욕을 부추기는 마귀들이 들끓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내 안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로마서 5:5,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기도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너끈히 용서하고 용납하게 됩니다. 지체들의 기쁨에는 함께 기뻐하고, 지체들의 어려움은 같이 아파하며, 어찌하든지 돕고 함께 하려는 사랑이 흘러나갑니다. 내 안에는 이런 자원이 없었는데 말이죠.
사랑은 느낌이나 체험이 아닙니다. 성령의 의지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기도합시다. 십자가의 사랑 안에 머무릅시다. 그러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주님의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임재 안에 침묵하며 기도할수록, ‘서로 사랑’이 더 커지고 확장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 소수자, 피조세계가 ‘나의 너’가 되어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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