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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희생 없는 신앙?

by 분당교회 2015. 3. 27.

희생 없는 신앙?


겨우내 얼었던 대지에 봄기운이 돌더니 새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저 여린 새싹들이 이 봄날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가을 가졌던 것을 모두 내어주고 얼어붙은 땅 속에서 기다리고 참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간이 가면 저절로 오는 봄날보다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며 준비해 온 사람들이 맞는 봄날이야말로 참다운 새날을 맞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새날을 꿈꾸며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까요? 종교와 신앙은 한 편으로는 인생과 역사의 새날에 대한 희망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세상과 인간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하셨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신앙인들은 늘 새 삶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변화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현실에 안주해서 안일하게 사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예언자들이, 예수께서, 사도 바울이 그렇게 도전하고 변화시켰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인도 국민에게 7가지 사회악에 대해서 절박하게 호소했습니다. 이 사회악이 개선되지 않으면 국가는 희망이 없으며, 멸망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7가지 사회악은 ‘첫째는 원칙 없는 정치, 둘째 일함이 없는 부의 축적, 셋째 양심 없는 쾌락 추구, 넷째 인격과 개성이 없는 지식축적, 다섯째 도덕성 없는 상업, 여섯째 인간성 없는 과학, 일곱째 자기희생 없는 종교’입니다.



이 7가지 사회악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서 더 충격적입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원칙 없는 정치에 흔들리고, 돈만 좇는 부정부패의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있으며 교육은 학생들의 인격을 수양해야 한다는 본질이 무시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또한 쾌락을 위해서는 어린 여학생들까지도 쾌락의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무섭고도 파렴치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악을 말하면서 ‘희생 없는 종교’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디의 묘비명인 7대 사회악)


신앙인에게 희생이라는 낱말을 빼앗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한쪽 날개를 빼앗긴 새처럼 될 것입니다. 한쪽의 남은 날개란 위로와 축복과 평안이 될테니까요. 개인적이며 내적인 위로와 축복과 평안 역시 신앙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단히 귀중한 가치이긴 하지만 여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동참이 없다면 불구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희생 없는 신앙이 사회와 국가를 망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간디는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기심에 만족하는 신앙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책임을 다 하지 않을 때 세상에는 불의와 부패가 지속되고 저마다 이기심이 미덕인 것으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서 오히려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성전(Holy War)을 치른다고 하는 사람들은 희생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헛된 야망에 자신과 타인의 육신과 영혼을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잔인한 학살을 했던 십자군 전쟁이나 지금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눈먼 폭력은 종교를 사악한 집단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자기만족적인 광신 앞에서 우리는 진정한 희생과 신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밀알 하나가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밀알 하나가 떨어져 죽어야 하는 까닭은 많은 열매에 있습니다. 많은 열매로 나와 이웃이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낮아짐과 사랑으로 이웃이 위로받고 희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하느님의 귀한 선물들을 활용해서 공동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서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고 이웃에게 기쁨을 줄 수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의 수난 앞에서 매우 고심하셨습니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 주소서’하고 기원할까? 이런 고민을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민과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한 알의 밀알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이 기도를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문이 될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22일 사순 5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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