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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관심이 불러 온 변화

by 분당교회 2015. 3. 23.

관심이 불러 온 변화


사람에게는 그리워하는 대상의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누군가 돈을 그리워하면 그 사람에게서는 돈의 향기가 나겠지요. 또 누군가 권력을 그리워하면 역시 그에게서 권력의 냄새가 날 것입니다. 사랑을 그리워하면 사랑의 향기가, 꽃을 그리워하면 꽃향기가 날 것입니다. 오물이 썩는 곳에서 맡은 악취가 코끝에서 맴돌기도 하고 옷에 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냄새는 시간이 가고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는 인격의 냄새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번 만나 본 사람에게서 지독한 인격의 냄새가 났다고 한다면 아마도 계속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무슨 향기가 날까요?

또 사람은 관심의 크기와 방향대로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관심이 저급한 곳에 있는 사람은 늘 소졸한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속물근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반대로 관심이 숭고한 곳에 있는 사람은 작은 이익과 손해보다도 귀중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관심에 따라 환경을 바꾸어가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리움의 대상과 관심을 바꾸면 사람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원판불변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좀처럼 달라질 수 없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관심이 달라지면 그 사람의 인생의 가치와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그의 인품과 지성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율법에서 그리스도와 구원으로 관심이 달라졌기에 그는 회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은 유대인의 지도자이며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밤중에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예수를 찾아온 까닭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 할 정도로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그였지만 그에게는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야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처음에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관심은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예수의 주변을 맴돌면서 매우 유심히 바라보고 속마음으로 추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는 남아서 장례를 치루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이런 그를 두고 ‘숨어있는 제자’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와의 대화에서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은 어둠 속으로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악을 감추려고, 또는 자기가 행한 악한 일을 돌이켜보기 싫어서 어둠 속에 머물면서 빛을 미워합니다. 여기서 빛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면서 우상을 숭배했을 때 하느님은 불 뱀을 보내어 심판을 하십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죽자 모세는 다시 백성들을 살려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구리 뱀을 높이 올리게 하시고는 이를 쳐다 본 사람들을 살려주십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려 올리어지심으로 이를 바라보며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표상이요 이정표입니다. 빛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구원의 표식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는 말씀은 우리가 흔히 전철이나 복잡한 시내 거리에서 많이 듣는 말씀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선포하는 일이야 저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공중도덕도 지키지 않고 사람들에게 협박을 하는 내용으로 전해지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 공해가 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가려버립니다. 단순히 앵무새처럼 성경의 글자만 반복해서 외친다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적어도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가 보여준 삶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길을 따르지 않고서, 내가 변화될 자세가 되어있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 것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관심의 방향이 밑으로만 향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머리 들어 관심의 방향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으로 향해야 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15일 사순 4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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