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도덕성
도덕적이지 않은 성전이 있을까요? 성전은 성전 자체로서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에 도덕성을 따질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전이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이는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세상에서 부도덕한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신성한 성전에서 죄를 씻고 거듭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 성전이 부도덕하다면 인간의 죄는 어디서 씻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성전이 부도덕해지면 하느님 역시 부도덕한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을까요?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의 상징을 성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계시는 성전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외부의 침략으로 두 번이나 파괴된 성전을 짓고 또 지어냈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출입마저 철저히 금지시킬 만큼 신성시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방인을 성전에 들였다는 죄목으로 유다인들에게 고발당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성전이 부도덕한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일 년에 한번 이상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비둘기나 양과 소 등등의 제물을 가져오면 다 순수성이 떨어진다고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성전에서 파는 어린 양과 비둘기 등을 사서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상인들은 엄청난 폭리를 취합니다. 또한 이 제물들을 사기 위해서는 여기서 쓰는 화폐로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환전상 역시 엄청난 이득을 취하게 됩니다. 이런 상인들의 거래는 당연히 대제사장과 사제들의 용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당연히 제사장들의 지배 권력과 상인들은 결탁했고 성전은 그들의 사적인 이익의 도구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하느님 팔아 장사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성전 자체는 그것을 세우려는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과 충성의 결실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은총의 결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성전 자체는 신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 제사 드리는 사람들의 도덕성이 타락할 때는 성전도 더럽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느 대형교회에서 엄청난 크기의 예배당을 지으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수천억의 건축비를 둘러싸고 교인들과 목사와의 갈등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성전에는 어떤 도덕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과연 진리와 사랑의 등대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요? 그 건축물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할 수 있을까요? 건축물 자체로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안에 어떤 도덕성과 신앙심이 살아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 안에서 예수와 그 복음을 장사하는 행태가 벌어진다면 오히려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성전답게 만들기 위해서 장사치들을 몰아냈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아무 죄 없으시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께서 이토록 격노하시고 다소 폭력적인 행동을 하셨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마도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이 사건이 매우 중요하고도 큰 사건이라 생각 했던 모양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성전정화 사건을 전반부 앞쪽에서 기술하고 있으니까요.
이 사건을 보면 대략 네 부류의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전에서 장사하면서 불의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과 이와 결탁한 성전권력층. 둘째, 이들이 정한 규칙에 아무 생각 없이 순응하는 사람들. 셋째, 속으로 불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어쩔 수 없이 예물을 사서 바치는 사람들. 넷째, 예수님처럼 이를 뒤집어엎는 사람. 예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받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바로 이 성전정화 사건이었던 것만큼 정의를 실현하는 길은 수난이 따르는 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이 우리 마음속의 성전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우리 마음속의 성전에서 하느님을 나의 이익의 도구로 삼으려는 마음을 치우는 정화에는 큰 고난이 따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을 향한 정의와 진리의 첫 걸음입니다. 또한 우리 성전의 도덕성을 충실히 보전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8일 사순 3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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