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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별 따라 온 사람들

by 분당교회 2016. 1. 3.

별 따라 온 사람들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따라 유다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리고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라서 유다인의 왕을 경배하러 올 까닭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외교적인 행위로 이웃 나라의 사절이라면 모를까요. 그런데 이들이 새로 나신 유다인의 왕을 찾는 것을 보고는 헤로데 왕은 당황했으며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유다인들은 새로운 왕의 탄생과 존재를 모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방인이 하늘의 징조를 알아보고 메시아 탄생을 경배합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그들은 아기 예수께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립니다. 황금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유향은 거룩하신 분께 드리는 것이며, 몰약은 시신이 썩지 않게 바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거룩하신 왕이며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동방박사의 경배, 피터 폴 루벤스 그림) 


동방박사들은 별빛을 보고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말 그대로 생각한다면 아마도 낮에는 쉬고 밤에 걸었을 것 같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별빛은 더 빛나는 법이니까요. 그들이 점성가였다는 설도 있고 다른 나라 왕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만, 진리의 빛을 따라 지구 어디든지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또는 기독교에서 그렇게 믿는다고 알고 있지만 그 시대의 종교적인 상황을 생각해 볼 때 별빛을 보고서 귀한 분의 탄생을 알아내고 또 그 별을 따라 먼 길을 가는 것 자체가 매우 특별한 결단이 요구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유다인들은 메시아 대망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구세주가 자기 민족을 구원할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경배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찾아야 하고 경배를 드릴 의무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우 진지하게 별빛을 바라보고 걸었던 것입니다. 진리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아주 낯선 길, 고생스러운 먼 길도 마다않고 따라나서는 자세에서 매우 깊은 사명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에 매우 초라한 ‘마구간’(마태오 복음에는 마구간이라는 말은 없지만 루가 복음서에 의해 이야기하자면)에 누워있는 한 아기에게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이들에게 확신이 없었다면 과연 초라하고 가난한 목수 부부의 아들을 그렇게 경배할 수 있었을까요? 이들은 온 인류를 어둠 속에서 구원하실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바로 자신들 앞에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늘의 빛이 가리켜 주는 대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홀연히 떠났습니다. 경배 이외에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요구 사항도 없었습니다. 어떤 보상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헤로데 왕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그들은 어떤 출세와 인정을 바라지 않았으니까요. 어떤 신앙인이 이럴 수 있을까요? 


진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사람들은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께서 구세주이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그를 경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귀중한 일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이방인들이 예수를 경배했다는 것을 기념하여 우리 교회에서는 공현절로 지킵니다. 예수께서는 유다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드러나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셨음을 기념한다면, 공현절은 민족과 계급과 시대를 초월하여 온 세상이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찬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와 성서 이후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것은 유다인보다 이방인이 오히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고, 순교하기까지 했습니다. 세계를 향해 복음을 증언하러 다녔습니다. 관습과 핏줄만 가졌다는 것만으로 선민의식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진리를 보았고 영적으로 경배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역사의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의 신앙의 순례가 시작됩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또 어느 길을 가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동방박사들이 가졌던 확신이 있고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신앙이라면 우리 삶에 특별한 성취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3일 공현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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