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맛보는 하늘나라의 축제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이 첫 번째 행한 기적은 이라고 전합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기적 사건들을 불과 몇 개만 전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른 기적들 중에서도 매우 깊은 의미를 담은 예수님의 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첫 번째로 행한 기적이라고 특히 강조한 것을 보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건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만큼 잔치의 기쁨이야말로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잠시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기뻐하고 흥겨운 축제를 벌이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특히나 왕의 아들의 잔치에는 모두를 초대하지만 오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씀에서 참여하는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혼 예식과 잔치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식만 있고 잔치가 없으면 마치 학교에서 조회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듯이 형식적인 요식행위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반면에 의식이 없고 잔치만 있으면 무엇 때문에 먹고 마시는지 그 의미를 모르게 되어 그저 식사 행위에 그치고 말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축제에는 기념할만한 의식이 거룩하게 진행되고 잔치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의식은 인류가 태초부터 매우 중요한 인생과 역사의 전환점에서 신 앞에 제사를 지내면서 신을 만나고 초월자에게 의탁하는 것에서 발전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의식에는 인류의 환상 또는 꿈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제사와 축제 속에서 인류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중세기 서양에서 행하여졌던 바보제에서 일반 서민들은 고위 성직자나 귀족들을 조롱하고 풍자함으로서 평등 세상에 대한 꿈을 키워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성들이 저자거리에서 행했던 탈춤과 마당극에서 양반들의 위선을 풍자하고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놀이를 했습니다. 역시 고달픈 삶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래에는 좀 더 나은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꿈을 표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파울로 베로네쎄 그림)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하시기도 하고 몸소 혼인 잔치에 참여하신 것은 다른 세상이 아닌 백성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신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셨을 때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져 잔치 분위기가 깨질 판이었습니다. 당시 그 지역의 혼인 풍습에 의하면 며칠을 두고 잔치가 지속되는데 중간에 잔치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상황을 알렸고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무엇을 시키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결예식을 위해 마련해 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고 그 것을 퍼서 나누어주라고 합니다.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고 잔치에 온 사람들은 좋은 포도주에 감탄합니다.
술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태도를 가진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어쨌든 애주가들한테는 매우 기쁜 소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몸소 술을 만드셨고 또 실컷 마시라고 나누어 주셨으니까요.
잔치에는 흥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있고 신명이 있어야 잔치가 잔치다워 집니다. 신명을 통해 그동안 가졌던 가식과 인간적인 담을 허물고 내면과 내면 깊은 곳에 고인 것들을 꺼낼 수 있습니다. 가끔 회전목마 앞에서 그것을 바라보면서 내심 타보고는 싶지만 막상 올라타지 못하고 망설이는 아이처럼 선뜻 자신을 내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체면과 격식과 자존심 때문에 신명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축제는 그런 마음이 녹아내리고 순진하게 흥겨움을 나누는 속에서 뜨거워집니다. 또한 그런 축제를 함께 경험한 사람들이 갖는 동료의식은 남다릅니다.
신학적 이론과 교리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잔치를 맛보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알코올 성분을 잘 분석하여 그 재료가 무엇으로 이루어졌고 발효를 어떻게 했는지를 잘 안다고 해서 술맛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신앙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교리적 지식보다도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 흥겨움을 나타낼 줄 알고 마음 속 깊은 곳에 고인 것들을 꺼낼 수 있는 열린 마음일 것입니다.
잔치는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체험하는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17일 연중 2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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