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복음을
며칠 전에 별세하신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선생은 인류 문명의 역사는 언제나 변방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이 되어왔다고 했습니다.(‘변방을 찾아서’, 2012) 오리엔트의 변방인 그리스 로마, 그리스 로마의 변방인 합스부르크와 비잔틴, 근대사의 시작이 된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미국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은 그 중심지가 부단히 변방으로 변방으로 이동해 간 역사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사표가 된 인물들 역시 변방에서 나서 변방의 삶을 살았습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그랬고, 공자의 삶이 그랬습니다. 조선의 이성계 또한 변방인 동북면이 근거지였습니다. 때문에 사회를 발전시키고 역사를 변화시킬 원동력과 잠재력은 바로 이 변방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창조적이고 변화의 원동력이 되는 변방성은 단지 지리적인 위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이대로 지속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더 나은 세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이대로 사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를 질문하고 성찰하는 변방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은 변화를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형성해서 쌓아놓은 시스템과 의식이 바뀌지 않아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변방이 진정한 창조적인 변방으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심부와 강자에 대해 갖는 열등감은 자신이 강자 또는 중심부에 진입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변방의식이라고 할 수는 없고 단지 중심에서 탈락한 사람의 열등감일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께서는 세상을 변화시킨 변방인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비천하고 낮은 곳의 상징인 마구간에서 탄생하셨고 노동자인 목수의 아들로 성장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시의 중심부인 예루살렘 성전을 부러워하거나 바리사이파 사람, 또는 사회 지도층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움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즉 콤플렉스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졌음을 갈릴래아에서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처음 찾아 가신 곳이 가난한 사람들, 비천하고 배척받는 사람들 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하고 예수의 복음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는 루가복음 4장 18절의 말씀은 ‘메시아 취임사’라고도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읽고서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신 것은 바로 본인이 메시아임을 선언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요셉과 어린 예수)
가난한 사람, 묶인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인간답게 살아갈 방도가 별로 없어 보이고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절망의 벼랑 끝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들에게 광명의 빛, 희망의 빛을 주는 것이 복음의 진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레위기 25장에는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법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7년째 되는 해는 안식년이 되므로 땅을 아주 묵혀 씨도 뿌리지 말고 포도 순도 치지 말라고 합니다. 땅을 묵히는 것은 종살이 하는 사람들이나 품꾼들이나 식객들까지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안식년이 일곱 번 돌아오는 해의 일곱째 되는 날이면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 퍼지게 하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벗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궁핍해서 땅을 팔아야 했던 사람들의 땅을 돌려주고 원래의 소유지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웃들에게 억울하게 하지 말고, 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역시 자유인으로 풀어주라고 합니다. 모두가 원상태를 회복하는 해입니다. 모든 땅이 하느님의 땅이며 인간은 그저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희년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은총의 해’이며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약자들이 자유를 얻고, 정의를 통해 평화를 이루는 가운데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을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권력으로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의 곁으로 가셔서 그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성취하셨습니다.
종교와 신앙은 백성들과 함께 희망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약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복음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17일 연중 2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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