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대림의 삶을 위한 주님의 은총!

by 분당교회 2017. 12. 12.

2017년 12월 10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르 1:1-8


대림의 삶을 위한 주님의 은총!


지난 대림 1주일 설교제목을 기억하시나요? “깨어 있으라!” 

내용을 기억하시는 분? 깨어 있는 삶이란? 깨어 기도하는 것! 

깨어 기도함이란 주님과의 깊은 친교로 일상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 일상을 하느님 나라의 삶으로 사는 것! 


오늘 애찬 후 대림 특강 - “깨어 있음, 일상의 영성”을 통해 일상의 영성을 회복하는 은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오늘 대림 2주일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오늘 복음 마르코 1장 1절을 보니, “복음”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우리가 흔하게 듣는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읽은 복음 아래 14절, 1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하셨다.” - 복음이란 하느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란 하느님께서 부드러운 사랑과 인격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보여주고 새로 시작한 나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의 통치 아래에 들어가 그 사랑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성경의 일관된 핵심 주제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말씀은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단일 저자가 아닙니다. 1-39장은 제 1이사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멸망 전에 예언한 말씀들이다. 40-55장은 제 2이사야라고 합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쓴 것입니다. 56-66장은 제 3이사야입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가 배경입니다.


이스라엘은 공평과 정의를 행함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하느님 나라라는 비전으로 하느님이 직접 세우신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케 해 주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에 제 1이사야는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심판의 선포는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끝내 돌이키지 않은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토록 따르던 우상을 그 본토 이방의 나라에 가서 실컷 섬기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삶은 노예로 살아가는 비참함 자체였습니다. 


제 2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시간이 종료되었다고 선포됩니다. 제 2의 출애굽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본토로 돌아가는 해방을 선포합니다. 

2절, "예루살렘 시민에게 다정스레 일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 그만하면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야훼의 손에서 죄벌을 곱절이나 받았다고 외쳐라." 


하느님이 다스리시게 되는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합니다. 

3절,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9절,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너, 예루살렘아. 힘껏 외쳐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라. 유다의 모든 도시에 알려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저기 오신다.” 

- 야훼께서 오신다는 말이 곧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 2이사야는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할 일을 말합니다. 길을 닦는 것입니다.

3절-4절,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본 “길”은 그의 고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왕의 길”이라고 불리는 길로, 바벨론 제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건설한 대로였습니다. 


이 길을 통해서 바벨론은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식민지에서 수탈한 재화와 노예를 들여와 제국을 강화했습니다. 절대 왕권 폭압 아래 사람들이 노예로 살아가는 제국이 바벨론이었습니다. 

   

“길을 닦으라”는 제 2예언자의 외침은 이런 제국의 길에 반대되는, 오늘 시편에서 노래하는,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는 나라. 땅에서는 진실이 돋아나오고 하늘에서 정의가 굽어보는 나라”인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러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는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황금과 권력의 우상을 숭배하는 제국의 백성으로 살 것인지, 하느님만을 왕으로 섬기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 것인지’를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회개를 선포한 세례 요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동일합니다. 바벨론 제국이 로마제국으로 나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황금을 숭배하고 착취와 수탈로 사람을 억압하는 제국의 질서는 세례 요한의 시대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오늘의 시대는 맘몬이 최고의 권력으로 군림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최후의 제국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와 세례 요한의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라”는 외침이 여전히 큰 울림으로 선포되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길을 닦는다는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란 돌이키는 것입니다. 황금을 욕망하고 힘으로 다스리는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제국의 백성으로 살고 있다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공평과 정의와 사랑을 행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전환입니다. 


세례 요한의 선포에 유다인들은 회개했다는 마음의 결단을 세례를 받음으로 확증했습니다. 원래 세례는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때 치르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세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 유다인들이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자신들의 삶이 이방인과 같았음을 인정하고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세속과 정욕과 마귀를 거절하고 하느님만을 믿고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약속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통해 세속과 정욕과 마귀를 따라 살던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성자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은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대망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서신은 주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합니다. 

11절,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 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쓰십시오.”


대림의 그리스도인은 먼저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So you should serve and honor God by the way you live. 삶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며 영광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예언자들의 말씀에 따르면, “공평과 정의를 힘쓰며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일상 영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날과 그 시간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응답 여하에 따라 주님의 재림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면 다시 오신다고 하십니다. 

마태 24:14,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끝이 올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갈망하며, 해외 오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성공회도 127년 전, 존 코프주교님도 그 마음으로 조선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우리 교회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쓰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말을 주목해 봅니다. 

8절,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시만,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예수님의 성령세례 약속이 오순절에 성취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 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를 대신한 거룩한 희생임을 믿습니다. 그 사랑에 감복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고픈 자원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성령의 감동 감화라고 하고 성령의 내적 충만 이라고도 합니다.


지난 금요일 엠마우스 오전반에서 어머님들이 성령세례 받고 성령 충만해지니까 힘든 인생 여정에서도 감사가 터져 나오고 주님만 사랑하며 기쁨으로 섬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간증들을 나누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은사와 능력을 받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의 외적 충만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며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는 대림의 삶을 위하여’ 성령 충만을 위한 성령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합니다. 

에페 5:18,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더욱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말씀 묵상과 기도로 성령의 내적 충만과 외적 충만을 누리십시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대림절 매일기도회를 통해 성령 세례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성탄  (0) 2017.12.26
대림공동체의 영성  (0) 2017.12.18
깨어 있으라!  (1) 2017.12.03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일  (0) 2017.11.27
땅에 묻어두지 마라  (0) 2017.11.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