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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진정한 성탄

by 분당교회 2017. 12. 26.

2017년 12월 25 성탄절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요한 1:1-14


진정한 성탄



어제 성탄 밤 설교에서 나눈 표현으로 인사해 볼까요? “그러므로 메리 크리스마스”. “A 그러므로 B”라고 할 때, A는 원인이고 B는 결과입니다. 성경에서 A는 “하느님이 하신 일”을 말하고, B는 “A에 반응하는 인간의 삶”을 나타냅니다. A - 하느님이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으니 : 성탄!, B - 그러므로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하느님이 하신 일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나누는 또 다른 성탄 인사가 있습니다. Very Happy Holiday입니다. 즐겁게 먹고 마시는 휴일 정도로 성탄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성탄이 왜 기쁜 소식인지를 모른 채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는데, 청년들이 술에 취해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더군요. 


영주의 향토시인이신 ‘전선구’님은 <성탄절 유감>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오던 첫날

경건과 경외로 예배하던

목동들은 이제 없습니다.


옛날처럼 당신이 두려워

싹을 자르려는 포악한 군사는 없지만

그들보다 썩은 자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치부하고

당신을 가로막고 영광을 받습니다.


그때나 오늘이나

당신을 위한 날이 아닌가봅니다

거리에 당신을 찬미하는 음악이 퍼지지만

실상 당신을 위한 노래가 아니고

상혼과 환락에 취한 군상들의

광란과 쾌락을 즐기는 소음입니다.


당신 말씀을

거리의 네온처럼 변색시키고

자신의 욕심과 권위를 위해 말씀을 해석하는

저 허수아비들의 외침.......

그 입이 잠들게 하소서

오직 겸손하게 당신을 사모하는 자의

별로 그 빛을 비취게 하소서. 


어제 성탄밤 예배에서 읽은 복음에서,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진 사람들은 목동들이었습니다. 새벽 미명 가장 어둡고 추울 때 천사들은 노숙하며 노동하는 목동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가장 일차적인 관심이 가난한 자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아주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성탄절은 태초부터 계셨고,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날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은 마침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예수님을 보내신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요한 1장 12절입니다.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우리가 그 분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성자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믿을 때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누리게 되는 특권을 말해 줍니다. 1장 14절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 예수님에게 충만한 은총과 진리가 나의 것이 됩니다. 


먼저 은총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은총이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아침기도 때마다 즈가리야의 노래를 교독합니다. 루가 1장에 기록되어 있는 즈가리야가 예언한 말씀입니다. “78 이것은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이라. 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 79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이라.” 기도서에는 ‘우리 하느님의 애절하신 자비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애절하신 자비! 바로 이것이 성탄에 나타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성탄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사람은 이 애절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존재의 자족과 감사의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자녀됨의 특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누리는 두 번째 특권은 진리의 삶입니다.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진리의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 살아가게 합니다. 진리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20세기 후반기에 한국교회에서 유명했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3서 2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그대가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되어 나가기를 빕니다. 또 그대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도 건강하기를 빕니다.” - 개역본.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초대교회 지도자를 칭찬하며 축복을 기원한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이 이렇게 ‘가이오’를 칭찬한 이유가 요한3서 3절 4절에 나와 있습니다. “3 교우 몇 사람이 와서 그대의 진실한 생활 곧 그대가 진리를 좇아서 살고 있다는 말을 해 주어서 나는 무척 기뻤습니다. 4 내 자녀들이 진리를 좇아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 3서를 읽어보면 ‘가이오’가 진리 좇아 사는 구체적인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5절입니다. “교우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그네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성실하게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6절에서는 “사랑의 증언”이라고 기록합니다. 


교우들을 사랑하고 나그네를 환대하는 삶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삶은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죄인과 세리와 창녀의 친구로 사신 예수님! 이를 ‘연대의 영성’이라고 했습니다.


어제밤 페친이 쓴 글을 읽었는데 울림이 있어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1986년 12월21일, MBC ‘베스트셀러극장’(단편소설을 드라마로 제작했다. 영화 보는 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상황이라 광팬이었다.)에서 방송된 ‘산타클로스는 있는가’다. 얼마나 감동했는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이동하의 소설을 장선우 감독이 각색했다).


어느 겨울, 천막에 사는 넝마주이 삼형제 일땅, 이땅, 삼땅이는 고물상 주인에게 내일은 크리스마스니 나오지 말란 통보를 받는다. ‘클쑤마스’가 뭔지 모르는 삼형제는 ‘예수 생일’에 왜 쉬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천막에 오니 미친여자가 자신들의 밥을 훔쳐 먹고 있었다. 밥을 빼앗긴 삼형제가 가진 거라곤 연탄 한 장, 쌀 한 봉지, 미역 한 줄기뿐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한다. 

  이튿날 산타클로스에 대해 알게 된 삼형제는 천막에 구멍 난 양말을 걸어두고 잠들지만 허탕이었다. 삼형제는 자신들이 어려운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기 되기로 결심하고 도시를 배회하지만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선물(연탄, 쌀, 미역)을 받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그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축제, 파티였다. 



삼형제가 상처를 입고 천막으로 돌아오자 전날 밥을 훔쳐 먹은 미친여인이 아이를 낳은 채 힘들어하고 있었다. 삼형제가 하루 종일 들고 다닌 연탄. 쌀, 미역이 쓰임새를 찾은 것이다. 마리아,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 동방박사, 동방박사의 세 가지 선물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드라마를 보고 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네 이웃의 아픔에 연대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내일 다시 한파가 시작된다. 가난한 이들의 연대가 생각나는 성탄전야다. 연대가 사랑이다!(‘전원일기’의 응삼이(응사마) 아저씨가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진리의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가이오가 살아간 진리의 삶,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성공회 나눔의 집 식구들은 서울역에서 10여년 복직을 위해 애쓰고 있는 KTX 여승문원들의 완전한 복직을 위한 성탄연합 감사성찬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곳에 있지만, 기도로 함께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는 은총 가득한 삶! 진리를 알고 진리를 사는 삶!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 누리게 되는 특권입니다. 성탄하신 예수님을 보내신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이 축복을 누리게 하시고자 예언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직접 우리를 찾아오셔야만 했습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1독서의 증언입니다. 히브리 1:1-2,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홀만 헌터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에는 굳게 닫힌 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열어본 일이 없어서 그 밑에 잡초가 우거졌습니다. 예수님이 굳게 닫힌 문 밖에서 등불을 들고 두드립니다. 자세히 보면 문에 손잡이가 없습니다. 안에서 열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손잡이가 없는 대문 밖에서 등불을 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국 세인트폴 성당에 있는 홀만 헌터의 그림 '세상의 빛')


요한묵시록 3:20,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지금 예수님이 노크하십니다. 하느님의 애절하신 자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은총과 진리라는 특권을 누리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 삶에서 일어나야 하는 성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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