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4일 연중 2주일
하느님은 나를 만드신 분
누군가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고 있다면 공포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잘 알고 있다면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사실 서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사이에서도 배우자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합니다. 서로를 깊이 알아가고 아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 건강한 인격적 관계입니다.
오늘의 성시로 교송한 시편 139편은 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라님이 젊은 시절, 시편 139편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셨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경험이 평생 하느님과 동행하는 능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편 139편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봅시다. 먼저 하느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내 형편과 처지만이 아니라, 내 생각과 마음까지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느님이십니다. 1-4절, “1 야훼여,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 2 내가 앉아도 아시고 서 있어도 아십니다. 멀리 있어도 당신은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3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4 입을 벌리기도 전에 무슨 소리 할지, 야훼께서는 다 아십니다.”
하느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무소부재하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8-10절, “8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 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9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 10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
하느님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13-14절, 13 당신은 오장육부 만들어주시고 어머니 뱃속에 나를 빚어주셨으니 14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 몸을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
그래서 나를 향한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과 생각이 너무 깊고 많습니다. 17-18절, 17 하느님, 당신의 생각은 너무 깊어 미칠 길 없고, 너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길 없습니다. 18 세어보면 모래보다 많고 다 세었다 생각하면 또 있사옵니다.
시편139편이 노래하듯이 하느님은 전지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잘 표현한 찬양이 있습니다. 조준모님의 “하느님은 너를 만드신 분”이라는 노래입니다.
하느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하느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단다
하느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하느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쉬지 않고 지켜보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실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하느님은 너를 원하시는 분 이 세상 그 무엇 그 누구보다
하느님은 너를 원하시는 분 너와 같이 있고 싶어하신단다
하느님은 너를 인도하는 분 광야에서도 폭풍 중에도
하느님은 너를 인도하는 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실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믿습니까? 신앙은 바로 이 하느님을 알아가고 그 은총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이 하느님이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겁니다. 오늘 1독서를 보십시오. 소년 사무엘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의 엄마는 한나입니다. 엘카나와 결혼했지만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첩으로 들어와 아기를 낳은 브닌나에게서 수모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느님께 서원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삼상 1:11, 그는 서원을 하며 빌었다. "이 계집종의 가련한 모습을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 계집종을 저버리지 마시고 사내 아이 하나만 점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그 아이를 야훼께 바치겠습니다. 평생 그의 머리를 깎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삼상 3장 1절이 그리는 시대를 보면, 당대는 한나에게 아들이 없듯이 하느님에게도 아들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소년 사무엘은 엘리 밑에서 야훼를 섬기고 있었다. 그 때는 야훼께서 말씀도 자주 들려주시지 않았고 계시를 보여주시는 일도 드물었다.”
제사장이었던 엘리를 보십시오. 2절에서 “눈이 어두웠다‘고 상징적으로 말하듯이 영적으로 둔감했습니다. 자신의 제사장의 직분을 잇는 흡니와 비느하스의 패역함을 막지 못했습니다. 흡니와 비느하스는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을 사사로이 취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종들을 범하며 망나니짓을 했습니다.
제사장이 이 정도로 타락했으니, 백성들의 타락은 그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을 대리하여 공평과 정의로 이스라엘을 섬길 하느님의 대리자, 아들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서러움과 괴로움으로 기도하던 한나는 기도 중에, 자신처럼 아들이 없어 괴로워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드리겠다는 서원을 드립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주신 아들이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젖을 떼고 나서부터 엘리 밑에 와서 성전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기도의 아들 사무엘에게 하느님이 말을 걸어오신 겁니다.
이렇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 아내의 간증이 비슷합니다. 제가 수원교회 보좌로 5년을 지냈는데, 사택이 성당 경내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고 나오려오고 하는데, 누가 “인선아”하고 부르더랍니다. 사람은 없는데, 누군가는 부르고 너무 이상했는데,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사모로 무탈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은총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말을 걸어오시는 이유는 대화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통해 하느님 자신을 알려주시고, 시편이 노래한 하느님의 무궁한 생각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렇게 대화하며 사람과 함께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를 하느님의 대화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사무엘에게 말을 걸어오신 하느님은 이후 사무엘을 자신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가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느님과 대화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하느님의 비전을 성취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1독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9-20절,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다. 20 그리하여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야훼께서 세우신 예언자로 받들게 되었다.
사무엘에게 말을 걸어오시고 대화하며 동행하시어 그를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세우신 하느님이 우리가 믿는 바로 그 하느님이십니다. 사무엘에게 말을 걸어오시고 그의 삶을 인도하신 하느님이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한 계획을 품고 계십니다. 19절, 20절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도 기록되기를 원하십니다.
19절 20절에 여러분 각자의 이름을 넣어보십시오. “엘리야가 2018년을 사는 동안 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리하여 분당과 서울에 이르기까지 온 땅에서 엘리야를 야훼께서 세우신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들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이 말씀이 성취되는 될 수 있겠습니까?
소년 사무엘이 하느님께 드렸던 기도입니다. 10절, “야훼께서 거기에 나타나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묵주기도를 드리고 말씀 묵상을 하면서 주님과 교제합니다. 그리고 제게 하시고픈 말씀이 있는지를 여쭙니다. 여쭙고 침묵가운데 앉아 있으면 마음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침묵 중에 기도를 마칩니다.
그런데 몇 달 전, 주님께 여쭙고 침묵 가운데 있는데 마음 가운데 노래 가사가 올라왔습니다.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지 말아요.” 그 순간 요한 15장 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님이 제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사제로서 제가 가장 먼저 할 일이 기도와 묵상으로 주님과 연합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이 주신 말씀대로 주님 앞에 머무르며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면, 주님이 일을 하실 겁니다. 저는 새해에 주님 앞에 머무르고 사무엘이 드렸던 기도를 저의 기도로 삼으려고 합니다.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격언을 몇 개 읽어드립니다.
“- 교만 중에 가장 무서운 교만은 기도하지 않는 교만이다.
- 기도는 제 소리를 내기 위해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다.
- 기도 없는 곳에 사람만 일하고, 기도 있는 곳에 하느님이 일한다.
- 기도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 하느님께 감동되려 하지 않고 하느님을 감동시키려고 할 때 기도는 중언부언이 된다.
- 하느님은 기도에 응답하고, 기도자는 삶으로 하느님께 응답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분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요한 1:51,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서신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고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면 하느님의 어떠하심과 나와 우리 공동체를 향한 그분의 뜻을 알아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분을 알아가는 만큼 사랑하며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때 사무엘상 3장 19절, 20절 말씀이 성취되는 한 해를 살게 될 것입니다. “성공회 분당교회가 2018년 동안 야훼께서 함께 하시어 그가 한 말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리하여 분당과 서울에 이르기까지 분당교회를 야훼께서 세우신 교회로 우러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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