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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리더는 섬기는 종

by 분당교회 2018. 9. 23.

나해 연중 25주일
설교/말씀 : 김장환 엘리야 신부


리더는 섬기는 종 


어제부터 시작된 추석명절, 주님 안에서 기쁨 가득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성공회는 조상들의 은덕을 기억하는 설과 추석에는 성당에 나와 별세자들을 위한 성찬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권합니다. 그래서 설과 추석 성찬예배는 주일예배보다 우선 지키도록 합니다. 내일 오전 10시에 추석성찬예배가 있으니 가족과 함께 오시기 바랍니다. 


지난 두 주에 걸쳐 앞으로 2년간 교회를 위해 헌신할 교회위원을 선출했습니다. 30일에 신자회장을 선출하고 사제회장을 지명하면, 신자회장 사제회장 선출직 위원 4분, 당연직 위원 2분 등 8분으로 교회위원회가 구성 됩니다. 신자사역자는 의무봉사자로 교회위원들과 함께 섬기게 됩니다.


신학자들은 16세기 종교개혁이 신자들에게 성경을 돌려주었다면, 20세기 이후 교회에 요구되는 개혁은 교회 사역을 신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평신도가 주인이 되는 보다 건강한 교회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방법으로 장로 집사 직분들을 없애고 우리 성공회의 교회위원회 같은 운영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공회 교회는 제도적으로는 평신도가 주인이 되는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는 교인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교회위원들이 관할사제와 함께 교회의 선교정책과 행정을 책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위원회는 성공회가 자랑할 만한 교회 치리구조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지난 25년간의 성공회 경험으로 볼 때 구조나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그 제도가 세워진 정신에 맞게 운용해갈 사람이 없다면 허사입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나 교회에서 많이 거론되는 주제가 리더십입니다. 조직과 제도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을 리더라고 부릅니다.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조직에서도 리더가 절대적이라면, 영혼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하느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유일한 조직체인 교회에서 리더는 더 없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성공회 교회에 신자사역자, 구역장, 교사, 활동단체임원들 등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러 봉사자들이 있지만, 교회위원이 리더의 중심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 성경에서 예수님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를 치유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 지방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두 번째로 수난 예고를 하셨습니다. 마르코 9:31,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달아 알기는커녕,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셔서 말씀하십니다. 마르코 9:35,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리더는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서번트 리더십’이라고 하지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윤추구만 하는 회사에서도 예수님의 서번트 리더십을 말합니다. 일반 세속 사회에서 호기 있게 나만 따르라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나 허구한 날 토론만 하자고 하는 방관자적 리더십에 지쳤기에, 섬기는 리더십에 주목합니다. 경영학계에서도 섬기는 리더십을 기존의 리더십을 대체할 21세기 리더십의 새로운 유형이라고 말합니다.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바로 이 서번트 리더십이 교회와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회복시켜 가는 제자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섬김이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잠시 침묵하며 묵상해 봅시다. “나는 섬기는 사람인가?” 성찰해 보시고 “내가 교회와 세상을 위해서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섬겨야 할까?” 2분 동안 묵상해 보겠습니다. - 묵상 후, 교회위원으로 선출되신 분들 중에 한 3분만 묵상을 나눠주시겠습니까? 1분 안에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예수님의 품에 안으시며 하신 말씀을 통해 섬김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섬기는 리더십이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받아들인다.’는 말은 “영접한다. 시인한다. 사랑으로 대접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린이 하나’, 예수님 시대에는 어린이가 가장 낮은 자였습니다. 어린이는 생각도 어릴 뿐만 아니라, 힘도 없어 전쟁이나 노역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쓸모없는 존재, 유익하지 않은 존재.



예수님이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양과 염소를 가르실 때 기준이 되는 “보잘 없는 이”들이 바로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 연약한 이들,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어린이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갓 태어난 아기도 있습니다. 아직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 영적인 아이들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리면 이해력이 부족합니다. 하느님 나라 공동체인 교회의 제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 생각이 아니면 떼를 쓰는 어린 아이들처럼, 영적인 어린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해 때로는 배척하고 방해하기도 합니다. 영적인 어린이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어리게 생각하고 엉뚱하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섬기는 사람은 이런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납하고 안아줘야 합니다. 왜 이렇게 어리냐고 판단하지 말고 아비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 주며 성장해 가도록 사랑으로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힘과 결연한 나의 의지로는 쉽게 절망합니다. 내가 연약하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아는데, 어떻게 이렇게 섬길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되 ‘내 이름’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지난주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불쑥 던지셨던 질문이 생각납니다. 마르코 8:29,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에는 “예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의 인생에서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두 가지의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기를 본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것입니다. ‘죄 곧 나’라는 자신의 실체를 보는 순간, 죄와 그의 대가인 죽음에서 나를 구원할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고백을 드릴 때 나를 구원하시고자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흘러넘치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럴 때 그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은 “예수님이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한 어린이 - 연약한 영혼’을 섬기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어주시는 사랑의 능력으로 섬기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공회 교회법에 교회위원 피선거권이 세례와 견진을 받은 청장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의 어떤 수준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와 견진에 담긴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느님이 아들“이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죄인 된 우리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이 그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종인 나는 주인 된 예수님의 뜻대로만 일합니다. 



주교님이 안수해주시는 견진성사를 통해서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나에게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어 교회와 하느님 나라를 위한 헌신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많은 교회들이 리더가 리더답지 않아 고통을 겪습니다. 오늘 서신을 보면,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공동체 안에 분쟁과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야고보 3:13, “여러분 가운데 지혜롭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답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함으로써 그 증거를 보여주도록 하십시오.”


세례와 견진을 받으신 교우 여러분!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영혼을 섬기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새로 구성되어 섬기게 될 8분의 교회위원들과 신자사역자만이 아니라,여러분  모두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섬기는 리더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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