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일
김장환 엘리야 신부
차별의 장벽을 뛰어 넘는 사랑으로!
저도 사제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며 적지 않은 근심과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제 혈액형이 A형으로 소심해서인지, 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것이나, 교우 여러분의 말과 표정, 형편과 처지에 신경 쓰는 경우가 많고 생활인으로서 겪게 되는 여러 문제들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자주 아내와 대화 하며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하느님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제 삶에서 하느님 체험, 하느님의 임재 경험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느님의 임재,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며 위로와 힘을 얻으셨는지요?
저는 지난 수요일 아침묵상과 저녁 수요예배 시간에 그 은총을 누렸습니다. 당일 복음은 루가 4장 38절부터 44절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간청으로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고, 이어 동네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 주시며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음 날 아침 일찍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고 더 머물러 달라고 자신을 잡은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른 동네에 전도하러 가셨습니다.
평소에 이 본문을 보았을 때는 4장 43절, “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다른 나라에도 전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일을 하도록 나를 보내셨다.”는 말씀에 머물렀습니다. 사제의 소명과 교회의 선교를 생각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에는, “예수님이 온갖 병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 모두 고쳐주셨다”는 40절 말씀에 머물렀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마귀를 쫒아내는 능력이면, 병자 전체를 향해 명령만 하셔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것인데,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얹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 왔습니다.
묵상 가운데 나도 그 자리에 있는 병자가 되었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예수님 앞에 나갔는데, 예수님이 “어디가 아프니?” “뭐가 그리 힘드니?” 물어 오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주님 품에 안기고 내 속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순간 마음에 주님의 위로가 가득하고 눈물이 핑 돌며 힘이 솟는 느낌이었습니다. 기도학교를 통해 배운 바로는 이런 방식의 묵상을 복음관상기도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현존 체험은 꼭 기도와 묵상이 아니어도, 일상 가운데 만나는 사람이나 사건 속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잠시 두 사람씩 마주 보고 앉아 지난 한 주간 하느님의 체험을 나눠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먼저 각자 1분 정도 묵상하시고 그 다음, 두 분이 마주보고 앉아 한 사람당 2분 정도씩 총 5분 동안 나눔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제가 종을 치면 1분 묵상, 다시 종을 치면 마주 보고 앉아 한 분이 2분 나눔, 다시 종을 치면 다른 분이 2분 나눔, 또 종을 치면 마칩니다. (나눔)
이제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의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탄핵 정국 때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이 외쳤던 함성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 1항입니다. 최고의 법이 규정하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입니다.
교회에도 최고의 법이 있습니다. 오늘 2독서 야고보서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줍니다. 2장 8절입니다.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최고의 법을 지킨다면 잘 하는 일이지만” 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최고의 법은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최고의 법대로, 누구나 환대하고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웃 사랑이라는 최고의 법으로 살아가야 하는 교회 안에서 그 법이 무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자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서신 야고보서 2장을 보면, 부자는 환영하고 가난한 사람은 업신여기는 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모습입니다.
차별과 배제는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은 재력, 학벌, 지위, 외모, 성향, 이념, 인종 등의 이유로 차별하고 배제합니다. 교회 안에도 그런 세속적인 가치관이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하느님 안 믿는 재벌 아들로 사는 게 좋을까? 좀 넉넉하지 않아도 하느님의 아들도 사는 게 좋을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오늘과 다음 주 교회위원 선거를 하는데 여러분이 판단하는 기준이 지난주에 말씀드린 신자다움이 아니라면, 교회도 세상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신자다움이란? 예배자, 덕스러운 언어, 하느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 그리고 청지기!
바리사이파로 대표되는 유다인들은 그들이 지키는 율법이 최고의 법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못 지키는 사람들을 모두 다 죄인으로 정죄하고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죄인으로 배제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예수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당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창녀와 반역자 세리 같은 사람까지도 환대하시며 어울리셨으니 얼마나 못마땅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니 예수님이 이방 여인을 차별하십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인이 마귀들인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 앞에 나왔는데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마르코 7:27,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평소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모습과 너무 상반됩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왜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수님은 당대 유대인들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드러내시고자 함이라고 생각됩니다. 당대 유다인들은 이방인이면 개 취급했습니다. 현장에 함께 있던 제자들도 유대인이기에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인이 굴하지 않고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하고 말하자 예수님은 여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드러내시며, 유다인의 선민의식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모든 민족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마태오 28:19-20, “19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모든 차별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면 이 말씀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유대인들과 같습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 가족, 내 교회, 내 민족, 나랑 어울리는 사람들끼리입니다. 교회 안에 끼리끼리 문화가 팽배합니다. 이웃들이 어떤 고통을 당해도, 그저 나와 관계된 사람들하고만 잘 지내면 오케입니다. 무관심하기만 합니다. 우리 사랑의 폭이 좁고 그 한계가 너무 낮습니다.
제주도에 정착한 예멘 난민들에게 보여준 국민들의 반응도 그랬지만,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나 소수자들에게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은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자신의 종교와 신앙과 다르다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교회의 모습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점차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배제시키며 게토화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랑이란 그 대상이나 방법에 한계가 없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됩니다. 누구나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하며 섬기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고 우리 그리스도인 살아내야 하는 최고의 법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신들의 존엄성이 존중받는다고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을 봅니다. 내가 나환자의 상처를 씻어줄 때 나는 하느님 바로 그분을 돌봐드린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험입니까?”
교회는 환대하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이 사랑을 경험하는 하느님 나라의 모형이 교회입니다. 그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하느님 나라의 전진기지가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공동체를 세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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