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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넌 존귀한 사람이다!

by 분당교회 2019. 2. 24.

연중 7주일 루가 6:27-38

설교말씀 : 김장환 엘리야 사제


넌 존귀한 사람이다!


오늘 제가 짧은 설교를 준비했는데, 말씀을 나누기 전에 묵상하고 나누는 시간을 연습하려고 합니다. 성서를 묵상하는데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라는 자세입니다. 


묵상 나눔은 “context 나의 상황에서, challenge 내가 받은 도전으로, change 내게 일어난 변화, 내가 행해야 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5분 침묵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종을 치면 눈을 감고 침묵으로 들어갑니다. 침묵 중에 제가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복음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묵상 후에는 두 분이 짝을 지어 한 분이 2분 정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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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누셨습니까? 주 중 오늘 말씀들을 묵상하며 29절을 깊이 살펴보았습니다. 29절,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마태오 복음에는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또 재판을 걸어 속옷을 가지려거든 겉옷까지 내주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려면 당시 사회를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에는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폭력적인 사회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막강한 로마제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굴종을 강요 받았겠습니까? 무력으로 저항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을 뿐입니다. 로마를 이기는 길은 도저히 없어 보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른 뺨을 치려면 왼 손을 사용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왼 손을 불결한 일에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른 손으로 상대의 오른 뺨을 치려면 내 오른 손등으로 쳐야 합니다. 


오른 손등으로 친다는 것은 상대방을 하찮게 여기는 치욕의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맞는 사람이 다름 뺨을 돌려 때리라고 하는 것은 그 치욕을 치욕으로 여기지 않는 당당함입니다. 


신명기 24장 13절에, “해질 무렵이면 그 담보물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그 옷을 덮고 자리에 들며 너희에게 복을 빌어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너희 하느님 야훼 보시기에 잘하는 일이다.”라는 말씀이 있듯이 유대의 극빈자들에게 겉옷은 이불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겉옷을 빼앗아가는 악독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빼앗는 자가 강자여서 빼앗길 수밖에 없다면, 속옷마저 내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교에서는 벌거벗기는 것이 금기였는데 그리 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 수치가 벌거벗기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속옷까지 내어주라는 것은 그저 굴종하여 노예처럼 살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 강자에게 수치를 안겨주라는 말씀입니다.


29절 한 구절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존귀한 사람이다.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잘 아는 27절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저주하는 사람, 학대하는 사람, 다 원수 같은 존재들인데 그들에게 잘해주고 축복하고 기도해준다는 것은 내가 그 굴종에 매여 노예처럼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기는 존귀한 사람임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존귀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길이 바로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억압과 강제 앞에서 내가 인간임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고 그것을 비폭력저항이라고 합니다. 



1독서에 나오는 요셉도 형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그는 과거의 상처에 매여 인간됨의 본질을 상실한 존재가 살아가는 하느님 앞에 비루한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용서하는 사랑으로 자신이 존귀한 하느님의 사람임을 확증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느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유일한 길은 사랑하는 삶 밖에 없습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36절,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쉽지 않은 길입니다. 2독서 1고전 15장 49절에서 말하듯, 우리 안에는 하느님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하느님께 불순종하는 ‘흙으로 된 그 사람’, 아담의 형상도 있고 사랑으로 살다가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확증하신 ‘하늘에 속한 그 분’, 예수님의 형상도 있습니다. 사랑을 행함은 바로 이 예수님의 형상을 키워가는 믿음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십자가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 “아버지의 자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 중에 로마서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로마 5: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But God showed how much he loved us by having Christ die for us, even though we were sinful


우리가 하느님을 무시하고 떠나 있는 죄인임에도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원수였던 나를 위해서 죽으신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존귀한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나입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 앞에서도 노예로 굴종하며 살아갈 수 없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확인하는 성찬예배를 봉헌합니다. 사랑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십니다. 사랑의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아버지의 자비가 내 안에 충만해 집니다. 그 사랑으로 세상에 나가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귀한 주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랑이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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