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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기다리시는 하느님!

by 분당교회 2019. 12. 1.

2019년 12월 1일
대림 1주일 (마태 24:36-44 )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성공회 분당교회 관할사제)

 

설교 전, 주보 2면에 있는 대림절기 신비와 신앙이라는 글을 읽어 보겠습니다. <교회는 오늘 대림 1주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합니다. 대림절기는 성탄일 전 4주간 동안 세상의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待臨) 시간입니다. 라틴어로 “다가오다”(Adventus)는 뜻인 대림절기(Advent)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신비를 되새깁니다.

 

그 신비의 첫 번째는 이천 년 전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하느님의 사건입니다. 성탄절은 산타클로스의 날이 아니라,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러 연약한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날입니다. 우리가 기쁨과 더불어 겸손하게 회개와 절제의 마음으로 성탄절을 준비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두 번째는 오늘,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인들 안에, 우리 가운데 사십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동행합니다. 

 

세 번째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향한 기대와 희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오심으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주님의 다시 오심으로 온전히 완성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앞당겨 살아가며, 사랑으로 세상에 증언합니다. 

 

깨어 있는 신자는 이러한 대림절 신앙의 신비를 온전히 누립니다. 대림절기에 요청하는 회개와 절제의 생활은 우울한 부담이 아닙니다. 신앙의 신비 속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려고 우리 자신을 깨끗이 단장하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믿는 것을 종말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대개 두 가지 의문을 갖습니다. 첫 질문은 “진짜 주님이 다시 오실까?”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여러 번 약속하셨습니다. 복음서에 그 약속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성찬예배를 드릴 때마다,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고백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두 번째 질문은 “언제 오시냐?”는 것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오시는지’를 궁금해 합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재림의 약속이 지연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궁금증을 파고드는 집단이 있습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들은 종말을 강조하고 자기들만이 종말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교회라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오늘날, 종말과 심판을 유독 강조하거나 요한묵시록을 공부하자고 하면 이단으로 보셔도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종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에 따르면, 종말신앙이란 그 때와 그 시기에 대한 관심이 아니고 깨어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42절,  이렇게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44절,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

 

앞서 대림절 신앙의 신비를 말씀드리며 깨어있는 신자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앞당겨 살아가며 사랑으로 세상에 증언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깨어있는 삶을 위하여 예수님은 노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바른 종말 신앙을 갖기 위해서 노아의 때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중요하다는 겁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창세기 6장 이하에 나오는데, 신약성서에서 여러 번 인용되고 있습니다(히브 11:7, 1베드 3:20, 2베드 2:5). 노아가 깨어있는 신앙의 모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아의 때는 어떠했을까요?

 

첫째, 첫 번째 특징은 인간의 죄가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때에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창세 6:5-7, “야훼께서는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 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왜 사람을 만들었던가 싶으시어 마음이 아프셨다. 야훼께서는 "내가 지어낸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 쓸어버리리라. 공연히 사람을 만들었구나.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모조리 없애버리리라. 공연히 만들었구나!" 하고 탄식하셨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흡족해 하셨던 피조세계가 인간의 죄악으로 가득 차서 하느님의 마음은 아픔으로 가득 차고 심판을 계획하시며 탄식하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도 인간의 죄악은 여전했습니다. 오늘 서신 로마서 말씀으로 보면 12절, 인류는 어둠의 행실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은 13절,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는 것입니다. 이 죄악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이 죄의 대가는 역시 심판입니다. 

 

노아의 때는 인간은 그 죄의 값으로 물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인류의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심판이 유예되었습니다. 성탄은 바로 이 구원의 선물을 인류에게 주시고자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날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림절에 기억해야 하는 신앙의 신비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성탄의 인사가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그 어떤 처치에서도 성탄의 인사는 그래도, 그럼에도 메리 크리스마스가 됩니다.

 

둘째, 노아의 때에 두 번째 특징은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회개의 시간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건축하는데 소요된 시간 120년입니다. 이 기간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회개를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느님께서 설계해 주신 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목숨이 있는 온갖 동물을 암수 한 쌍씩, 온갖 새와 온갖 집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온갖 길짐승도 두 마리씩 들어와야 하고, 이들이 먹을 수 있는 온갖 양식을 저장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 규모는 어마어마해서 이전에는 한 번도 만들어 진 적이 없었던 큰 건축물이었습니다. 이 굉장한 건조물의 건축공정은 느리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노아가 하느님이 지시하는 대로 이 어려운 건축물을 지어가는 그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이 노아를 비웃기도 하고, 왜 이런 것을 짓고 있냐고 물어 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하느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신 심판 계획을 증거 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악으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는지 알려줬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고 노아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있었다면, 하느님은 그를 보아서라도 심판 계획을 더 늦추거나 철회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하느님의 성품이 그렇습니다. 요나의 심판 선포를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은 니느웨 성을 보십시오. 심판을 선포하는 하느님의 본심은 구원에 있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하느님께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루가복음에도 오늘 복음 말씀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노아의 예와 함께 소돔의 예도 나옵니다. 루가 17: 28-29, “28  또한 롯 시대와 같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짓고 하다가 29  롯이 소돔을 떠난 바로 그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리자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롯 이야기는 창세기 18장과 19장에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소돔의 죄악으로 인해 불로 심판하시려는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호소합니다. 창세 18:24, “죄 없는 사람 오십 명을 보시고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이에 하느님은 창세 18:26, “소돔 성에 죄 없는 사람이 오십 명만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다 용서해 줄 수 있다.”

 

이 50명이 45명, 40명, 30명, 20명으로 마침내 10명으로 내려갑니다. 마침내 그 10명이 없어서 소돔은 불의 심판을 받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 없는 사람’, 의인이란 죄가 하나도 없는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심판 계획을 선포하는 아브라함의 메시지를 듣고 돌아오는 의인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기는 오히려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절기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인생을 가장 존귀하고 가치있게 살 수 있는 것이기에 교회는 역사의 종말을 믿으며 주님의 재림에 있을 심판을 선포해야 합니다. 노아의 때처럼,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유예된 구원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이 곧 회개의 때입니다.

 

특별히 지금 인류는 환경 파괴로 인한 종말이 목전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소리치게 하는 사람들, 피조물을 통해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인류는 하느님의 지으신 피조 세계를 회복하며 창조질서를 보전해 가는 생태적 회개로 창조주 하느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지난 28일 유럽의회는 비상기후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가 이 행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셋째, 노아의 때의 세 번째 특징은 방주입니다. 

노아는 하느님께서 설계해 주신 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설계자이시고 노아는 건축가였습니다.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그는 방주를 짓는데 바쳤습니다. 노아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모본을 세상에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노아처럼, 생명을 보전할 방주를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표지라는 말은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미리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에덴동산 중앙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어 하느님의 살아계심과 그 뜻을 깨우치게 했듯이, 노아의 때에 방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이며 그 뜻에 순종하는 하느님의 사람의 표지였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대로 말씀드리자면 “깨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서울교구가 지난 11월 23일 교구의회를 통해 2020년 새 해에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 건강한 문화를 세워가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대조 사회이고 대안이 되는 사회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과 친밀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와 묵상, 성찬례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주님을 뜻을 알아차리고 일상 가운데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방주에 들어갈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간 모습이 나옵니다. 마태 24:38,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이는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하지만 이 일상에 매몰되는 삶이 적색경보입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늘 서신은 권고합니다. 로마 13:13-14,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오늘 1독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2:3, "자, 올라가자, 야훼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께서 계신 전으로! 사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가자. 법은 시온에서 나오고, 야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느니." 

 

지금은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만연합니다. 이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일상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며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드러내는 교회라는 방주를 튼튼하게 세워감으로 주님의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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