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일
사순 1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마태 4:1-11
안녕하세요? 잘 보이세요? 잘 들리시구요? 교우 여러분, 보고 싶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수다 떨면서 애찬 나누는 주일 풍경이 그립습니다.
코로나19 감염이 계속 확산되고 있어, 여러 가지로 위축되고 걱정이 밀려들어와도 말씀 가운데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코로나19가 속히 잦아들도록 기도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애쓰고 있는 공무원들과 의료진들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 속에 고통 받고 있는 대구 경북 국민들을 위로해 주시기를 더욱 간절히 기도합시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도 너무 어렵습니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물론, 사업하시는 분들도 타격이 크기만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사업하시는 교우들이 계시는데, 모두 잘 견뎌 내시기를 응원합니다.
교회들도 사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교회처럼 상가를 임대해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월세 등 현실적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으로 많이 힘들어 합니다. SNS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들이 올라오면 제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맘 내 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사순절이 시작한지 4일이 지나, 사순 1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첫 날, 재의수요일에는 아내와 단 둘이 재축복예식과 감사성찬예배를 봉헌했습니다.
예배 실황을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리고 깊어서 동영상으로 녹화를 했는데, 핸드폰이 안 좋아서인지 소리 녹음이 잘 안 되어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제 이마와 아내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재를 바르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든지요. 전례에 참여할 수 없었던 교우 여러분도 얼마나 슬프셨습니까?
AI가 인간을 대체해 가는 4차 산업혁명시대이 도래했다지만,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더 깊이 돌아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아울러 오늘 독서들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하느님을 멀리 떠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이 죄에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모든 독서들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어는 ‘죄’입니다.
성서는 분명하게 하느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는 존귀한 인격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그리고 사람에게 하느님이 지으신 피조세계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기셨다고 말합니다.
창세 1: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창세 1:26,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 2:15,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그리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라고 에덴동산 중앙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그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2:16-17, 16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사람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자기를 지으신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맡겨주신 에덴동산을 잘 관리하며 하느님이 주신 것을 누리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이 설정해 주신 경계 안에 있을 때,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스포츠도 엄격한 규칙 안에서 경기할 때 재미있는 것과 같습니다. 규칙을 무시하고 어기면 경기가 엉망이 됩니다.
우리 삶에 하느님이 지어주신 경계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갈 때 참된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 경계를 넘어서면 불행이 시작됩니다. 술은 어떻습니까? 사람들과 적당히 술을 마시며 교제하는 것이 일상의 작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과음하면 실수하게 됩니다. 술에 중독되면 인생이 파괴됩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않으면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물 스물 유혹이 밀려왔습니다. 유혹은 때로 하느님이 주신 것을 모두 부정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창세 3:1, "하느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이에 대한 하와의 대답에 이상한 기류가 나타납니다.
창세 3:2-3, "2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되, 3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만지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져보고도 먹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져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고 먹게 된다면 아예 만지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1데살 5:22, “악은 일은 어떤 종류이든지 멀리하십시오.”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는 말은 “이건 왜 안 주신거야?”하는 하느님에 대한 불만이 이입된 답입니다.
결정적인 유혹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나아가 인간도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이 왜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냐고 그것은 억압적인 삶 아니냐고, 하고 싶은 대로 욕망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창세 3:4-5,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이 유혹에 끌려서 여자는 그 나무를 쳐다봅니다. 창세 3:6,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 보니...” 여기서 ‘본다’는 단어의 의미가 눈을 떠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는 정도가 아닙니다. 영어 단어로 see가 아니라, ‘stare at’이라는 단어입니다. “집중해서 쳐다보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취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찬 시선입니다.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습니다.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어 남편 아담도 그것을 먹습니다.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에,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불순종은 그 말을 한 존재에 대한 무시입니다. 반역입니다.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음으로 온 우주 만물과 인생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자리를 찬탈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이 이것입니다. 죄 = SIN = ‘I’ Centeredness!.
죄의 결과는 참혹하기만 합니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럽지 않았던, 너무나 친밀했던 부부 관계에 벽이 생겼습니다.
창세 3:7,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
하느님과 함께 거닐던 에덴동산에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이 두려워 하느님을 피해 숨습니다.
창세 3:8,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 때 야훼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야훼 하느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창세 3:10,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노동의 소외가 발생하고 피조세계도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창세 3:17-18, 17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따먹지 말라고 내가 일찍이 일러둔 나무 열매를 따먹었으니,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18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창세 3:22-23, 22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먹고 끝없이 살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23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다.
죄로 인한 하느님과의 단절은 “이것을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2장 17절의 말씀대로,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적으로도 죽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창세 3:19,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오늘 1독서 창세기는 신화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겪게 된 죄의 결과는 우리의 실존입니다. 나와 너, 우리들 안에 벽이 있습니다. 배제하고 혐오하며 차별합니다. 힘들여 일하지만 만족이 없고 노동하는 것이 괴롭기만 합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는 회복 불능의 종말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창조주는 없다하고 자기가 주인 되어 살아갑니다.
사순절은 내가 얼마나 하느님을 무시하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는 죄인인지를 자각하는 시간입니다. 이 성찰이 깊을 때,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은총이 내 구원의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해 하느님을 피해 숨었을 때, 하느님은 아담을 향해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창세 3:9, “너 어디 있느냐?” 하느님의 이 외침은 “사람아, 너는 내 앞에 있어야 할 존재다. 너는 나와 눈 맞추며 나와 사랑을 나눠야만 살 수 있다. 나는 너를 원한다.”는 하느님의 간절함입니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사람의 본래 자리입니다. 아담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성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 어디 있느냐는 하느님의 외침에 응답하여 살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재의수요일부터 사순 3주일까지 드리는 성체후기도가 이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성자 예수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과 경건한 삶의 모본으로 이 땅에 보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삶의 발자취를 인내로써 따르게 하소서.”
여기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니까 그렇게 살 수 있었겠지 생각하신다면, 잘못된 믿음입니다. 초대교회 당신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의 믿음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광야에서 단식하신 ‘예수님이 몹시 시장하셨다’는 표현은 마태오가 굳이 기록해 놓은 말씀입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또 눈여겨보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갔는데도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어도 유혹은 여전합니다. 아니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려는 악마의 유혹은 더 강력합니다.
사탄은 하와를 쓰러뜨린 계략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며 유혹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단식하신 후 그 극심한 육체적인 배고픔에서도 하느님의 진리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시고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의 삶을 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건한 삶의 모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를 따라 갑니다.
마치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stare at 했던 시선처럼 우리 주님만을 응시하는 믿음의 눈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 존재의 본질을 회복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순절은 나 자신이 얼마나 하느님을 떠나 있는 연약한 죄인인지를 직시하고, 우리와 같은 사람을 오시어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그 모든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잠시 침묵합시다.
떼제 찬양 - “우리는 예수를 바라봅니다. 우리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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