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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샘솟는 물을 마시라!

by 분당교회 2020. 3. 15.

2020년 3월 15일

사순 3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요한 4:5-42

성공회는 주교제 교회입니다. 제가 분당교회 관할사제로 있지만, 주교님의 위임을 받아 주교님을 대리하여 사목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 12일 목요일 서울교구 이경호 베드로 주교님이 코로나19 감염사태에 관하여 사목서신을 발표하셨습니다. 하여 오늘은 설교 전에 먼저 사목서신을 부분 발췌하여 읽어드리겠습니다.

 

서울교구 이경호 베드로 주교님의 사목서신

 

<서울교구의 모든 교우님들께 삼위일체 하느님의 은총과 능력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사순 절기임에도 온전히 사순절에 마음을 모을 수 없는, 당혹스런 상황을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이 심각해서, 서울교구는 사순 첫날 ‘재의 수요일 예식’부터, 이어지는 4주 동안 주일 성찬례를 비롯한 모든 전례와 단체 활동을 중지했습니다. 

 

본래 전례와 성사의 교회인 성공회는 신자들이 직접 몸으로 참여하는 예배와 교육과 친교를 중시합니다. 그럼에도 교회공동체와 사회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 여럿이 모여서 하는 사목활동을 멈춘 것입니다.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교우들과의 친교 상통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은 아쉬움을 넘어 아픈 마음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불안과 공포가 종종 도를 지나 혐오와 비난으로 번지고, 경제는 불황과 침체를 맞게 되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살고, 교회로 모여 예배드리며, 다시 세상으로 흩어져 선교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큰 위기입니다. 교우들의 참여가 불가능해지면서 봉헌이 적어 재정이 어려워졌고 선교의 동력이 약해졌기에 교회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함께 모여 행하는 교회의 전례와 사목이 중지된 이 낯선 시간에 비로소 우리는 교회의 참 의미를 더욱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교회위원과 직분을 맡은 사역자 여러분! 이번 기회를 통해 성공회의 신앙생활은 습관적인 일상을 넘어서는 일임을 확인하고 도약해 보십시다. 하느님께 봉헌된 주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며 삶의 기쁨을 회복하는 일이 교회공동체가 선교를 펼치는 길임을 명심합시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지금, 주님의 은총 안에서 오늘의 어려움을 새로운 출발과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교우 여러분이 다시 기도와 정성을 모아주셔야 할 때입니다. 하여 교우 여러분께 몇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립니다.

 

1. 교회와 세상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코로나19 감염증 사태는 자연과 인간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존재들임을 깨닫게 합니다. 자신을 바쳐서 방역과 치료에 헌신하는 이들과 관계당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환자와 주변분들, 감염증으로 돌아가신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하루빨리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2.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여러 방법으로 헌금을 해주십시오. 

교회의 헌금은 참가비나 회비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봉헌하여 이룬 교회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며, 우리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하느님께 드리며 우리가 그분의 자녀임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전례 가운데 드리는 헌금이 봉헌의 전부가 아닙니다. 전례를 드리는 우리 자신이, 우리의 모든 것이, 우리 인생이 하느님께 바쳐진 것임을 확인하는 일이 봉헌생활입니다. 

 

3. 교우들 간의 친교와 상통을 위하여 힘써 주십시오. 

우리는 성직자들의 사목적 돌봄을 받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교우와 교우 사이에 맺어지는 친교와 상통이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출발점입니다. 교우님이 알고 있는 지체들에게 전화와 문자로 안부를 묻고 주님 안에서 격려와 위로를 나누어 주십시오. 교회공동체를 이룬 지체들 서로 상호신뢰, 상호존중, 상호협력의 관계를 충만하게 살아가기를 힘써 주십시오.

 

4. 불안과 공포, 혐오와 소란을 피하여 깊은 피정의 기회로 삼아주십시오. 

자기 진영의 이익을 챙기고자 편을 가르고 비방하는 일은 절대 신앙인이 삼가야 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 안에서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하느님께 나를 맡기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감사와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일입니다. 교회와 사제가 안내하는 말씀과 전례를 따라서 차분히 신앙을 성숙시켜 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께만 의지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5.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고 돕기를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은총을 누리며 하느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최고의 길입니다. 이번 사태로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 독거노인들, 소년소녀가장들, 노숙자들, 요양환자들, 이주민들,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하여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으면, 주님께 사랑을 베푼 이들로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분당교회는 여러분의 특별봉헌과 긴급구제재정으로 대구로 150만원을 플로윙 했습니다. 윤미경 엘리사벳 교우와 3여 또래모임 몇몇 교우들은 이주 노동자를 위해서 면마스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공회를 이루는 신자로서, 선교적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교우 여러분께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지난주일 복음은 요한복음 3장이었습니다. 등장인물이 니고데모였죠. 니고데모는 유대인으로서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4장에는 이름도 없는 사마리아 여자가 등장합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남편이 5명이 있었다는 말은 이 남자 저 남자와 몸을 섞은 불결한 여자라는 의미로 사마리아인들의 정체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남편 다섯은 역사적으로 사마리아를 다스렸던 다섯 강대국 -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를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의 눈으로 볼 때, 사마리아인들은 천하고 불결하며 지혜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의 사마리아 여자가 곧 사마리아인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중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예언자’라고 말하더니(19절),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29절), 마침내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사마리아 여자로 인해 그 마음에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구원의 열매가 맺어졌습니다. 

 

요한 4:39-42, 39 그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맞히셨다고 한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40 예수께서는 그들이 찾아와 자기들과 함께 묵으시기를 간청하므로 거기에서 이틀 동안 묵으셨는데 41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리고 그 여자에게 "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하고 말하였다.

 

반면에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한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인 상황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자 이야기를 3장과 4장으로 이어 배치하면서 사마리아인들조차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께 돌아오는 데,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대조하며 하느님의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성금요일에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치러주는 인물로 다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니고데모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 니고데모 같은 신자들이 많습니다. 평상시 세상 사람들과 살아가는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아, 술 담배 안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하느님 나라 백성다운 삶의 모습이 없어,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주위 사람들조차 사람이 그리스도인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까봐, 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부심이 없고 창피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숨기는 것입니다. 이를 니고데모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물론 자신이 예수쟁이라고 말로 떠벌일 필요는 없습니다. 믿음으로 일상을 살다보면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어제까지 사순절 성서통독으로 사도행전 14장까지 읽었는데(성서통독 잘 하고 계시죠?), 사도행전 11장 26절에 보면 안티오키아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하느님은 여러분이 사마리아 여자처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말과 행실로 드러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여 이 시간, 지난 주일과 이번 주일 복음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깊이 새겨봅니다. 

 

지난주일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뭐라고 하셨죠? 

 

요한 3:3,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새로 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나는 것, 즉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누리는 삶’을 말하는데, 요한은 이를 “영원한 생명”이라고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거듭 강조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 3: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외아들’, ‘모노게네스’, ‘하느님과 동일한 아들’, 독종자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느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나눈 대화에 동일한 내용의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 4:10,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시자”

-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예수님이 참된 생명을 주는 구원자이심을 알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인생들에게 만족을 주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1독서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바위를 치니 목마름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껏 마시는 물이 솟아났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0장 4절에서 이 바위가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기대대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갔습니다. 예언자-그리스도-구원자! 예수님을 바로 아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면, 그 삶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사마리아 여자를 보십시오. 28절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물을 길을 때 필요한 물동이를 내버립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지라도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도 또 다른 남자와 살아가는 이유는 채워지지 않는 내면 깊이 있는 목마름, 공허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실 수많은 인생이 사마리아 여자와 같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는 5번이나 바뀐 남자라는 존재가 바로 자기 존재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여자에게 “물을 달라”는 말은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은 같은 의미인 것이죠. 

 

샘솟는 물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구하고 쫓던 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물을 좀 다오’ ‘네 남편을 데려오라.’  

 

여러분이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하는 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만족을 구하던 인생에서 돌이키십시오.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따르던 세상의 것들은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여러분 인생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주님께 물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요한 4:10,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성령님이 그 생명을 공급해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럴 때 사도 바울로가 2독서 로마서 5장 1절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는 삶”을, 11절에서 말하는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물을 마시는 시간이 바로 예배입니다. 오늘 복음 4장 23절 2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으로 참되게”, 즉 전심으로 예배드릴 때 우리는 그 샘물을 마시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오늘 비록, 유투브로 예배드리고 있지만,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을 갈망하며 전심으로 주님의 얼굴을 구할 때, 또 그 마음으로 매일 묵상을 하며 기도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삶으로, 목마름 없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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