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2일 가해 사순 4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요한 9:1-41
교회력으로 벌써 사순 4주일입니다. 장미주일이라고 합니다. 장미주일이란, 장밋빛 제의를 입은 데서 비롯됐는데, 사순절 경건 훈련 중에 좋은 봄날,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는 쉼이 있는 주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당하고 있어, 침묵과 기도에 전념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진짜 보고 싶습니다. 오늘만 견디면 다음 주일부터는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코로나 소규모 집단 감염이 계속되고 초중고 개학이 연기되면서 서울교구도 전례와 모임 등 사목활동을 한 주 더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4월 5일 성지.고난주일부터 예배를 다시 드리기로 했지만, 분당교회는 당국의 강력한 행정명령도 있고 해서, 상황을 살펴보며 교회위원회와 논의하여 결정하겠습니다.
인류가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우리나라는 국민의 협조 속에 정부와 공무원, 의료진들의 헌신으로 이 난관을 통과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읽어본 ‘코로나 전사의 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간호장교 대위로 복무하다가 두 달 전 전역한 송정근 테클라 교우가 대구에 가서 의료봉사 중에 있습니다. 수고하는 의료진과 중대본 등 방역에 애쓰고 있는 공무원들을 기억하며, 우리나라와 전 인류가 코로나19 사태를 잘 이겨나가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켄터베리 대주교가 제안한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하고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로 질병과 죽음을 완전히 이기시고 승리하셨나이다. 비오니,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땅과 전 세계에 팽배한 코로나-19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 수고하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어,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주님을 진심으로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 복음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는 기적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소경은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실로암이란 “파견된 자”라는 뜻인데,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는 말은 ‘예수님에게 가서 씻음을 받으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눈을 뜨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누가 진짜 소경인지, 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처음 소경에게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는 능력자였을 뿐입니다. 자신과는 인격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렇게 예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내 문제해결과 소원성취를 위해 필요한 이름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며, 그 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인격적인 교제가 없습니다.
청소년기의 저의 모습이 이랬던 것 같습니다. 중 3때 무릎이 아파 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체육시간이면 교실을 지키는 신세였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와서 큰 누님 집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매형의 여동생 남편분이 집에 오셨고 그분이 제 무릎에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폐병을 앓다가 기도원에서 치유 받고 신학교를 다니시던 전도사였습니다. 기도를 받는데, 제 무릎이 박하사탕을 입에 문 것처럼 시원하더니 지금까지도 아프지 않습니다. 치유를 경험하면서 이후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다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저의 기도가 거의 소원을 비는 간구와 체험과 기적을 구하는 내용이었던 같습니다.
물론 하느님 나라에는 치유와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복음서에 기적이야기를 기록한 목적이 있습니다. 요한은 2장,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이야기부터 7개의 기적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기적’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로는 miracle이 아닌 ‘sign,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독자들이 기적 이야기를 통해 기적을 행하는 예수가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를 알고 믿도록 의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 20:31,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끓어 엎드렸다.”는 38절의 고백과 경배를 드리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소경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려갔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어와 그들과 대화하는 과정 중에 소경은 예수는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일을 행하는 것을 보니, 하느님이 보낸 사람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 역시 예수와는 인격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예언자란 하느님의 뜻을 대신하여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불순종하여 하느님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이에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폭로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랬고 예수님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떤 교인들은 ‘오 그 사람 입바른 소리하네.’ ‘옳은 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오 저 말은 내 생각과 같구나.’ 이렇게 자기 생각과 입장으로 판단합니다.
대학 시절과 청년기 동안, 저의 신앙이 이랬던 것 같습니다. 이 시기에 저는 불의하고 부패한 세상에 분노하며 하느님의 정의를 외치며 살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정의를 외면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죄함이 있었고 불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을 향한 적대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기적을 행하는 구원자로 여기는 것이나, 예언자로 여기는 것은 모두 나 중심의 관점과 태도입니다. 내 문제 해결, 나의 소원 성취, 내 생각의 실현, 자기의, 그리고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정죄 등으로 가득한 나 중심의 삶입니다.
저는 이런 신앙으로 청소년, 대학, 청년기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이 서른이 되어 성공회에 오고 신대원을 마친 후 성직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존재는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마음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C.S.루이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 되실 때 시각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등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에 대해 제자들조차 “죄를 뒤집어쓰고 나온 불행한 인간, 저주받은 인간”으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이 마땅히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누려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시선을 갖기 시작합니다.
1독서를 통해서도 우리는 겉모양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의 시선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주님으로 인해, 먼저 저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누구나 열등감이 있고 그로 인한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존재로서 나를 보게 되면서 하느님의 눈으로 나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선으로 타인을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용서하고 용납하는 주님의 사랑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또 사회적인 약자, 소수자들의 아픔이 공감하며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의 어둠을 보고 함께 아파하는 주님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주님의 거룩한 분노를 품고, 오늘 서신의 말씀처럼 “어둠을 폭로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용기”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을 고백하고 그 분을 경배할 때, 빛이신 예수님의 눈을 갖게 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귀한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으로 우리 성공회를 바라보고, 분당교회를 바라보니 너무 귀하고 감사한 공동체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 성공회는 온 몸으로 예배드리는 전례 중심의 교회인데, 사회의 공공성을 위해 현장예배를 선도적으로 포기하였습니다.
우리 성공회 분당교회는 어떻습니까? 월세와 관리비, 대출금 이자 등등 막대한 지출비용이 있음에도 대구경북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정성을 모아 플로윙했습니다. 또 코로나19의 사각 지대에 있는 이주 노동자를 위해서 수제 마스크를 제작해 보내신 제체가 있고, 자원하여 대구로 내려가 의료 봉사하고 있는 지체가 계십니다.
대한성공회, 그리고 성공회 분당교회는 이미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며 섬기는 복음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님의 눈을 갖는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마음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적은 좋은 글이 있어, 요약해 읽어드리며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가정사역자이신 송길원 목사님의 글입니다. 제목이 “나는 배우고 있다”입니다. “나는 배우고 있다”는 말은 이태리어로 “안코라 임파로”인데, 미켈란젤로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 그림을 완성한 후, 스케치북 한켠에 적은 글귀라고 합니다.
<나는 배웠다.
모든 시간은 정지되었다.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만나도 경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팥빙수를 겁 없이 떠먹던 날이 그립다. 가슴을 끌어안고 우정을 나누던 날이 또다시 올 수 있을까? 비로소 나는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나는 배웠다.
마스크를 써 본 뒤에야 지난날의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고 침묵을 배웠다.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도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나는 배웠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각도 대충…. 대충이 사태를 키우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제는 나 스스로 면역주치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바이러스 문제나 환경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의 대충, 대충이 공존과 상생(相生)을 파괴하는 길이라는 걸. ...
나는 배웠다.
가장 큰 바이러스는 사스도, 메르스도, 코로나도 아닌 내 마음을 늙고 병들게 하는 절망의 바이러스라는 것을.
그래, 우리는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 살기 위해 배워야 한다.>
그렇습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도 있지만, 우리는 그간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보고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 모두, 빛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침묵 후 기도
하느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습니다.
두려움이 일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죄 탓도 아닌데 속절없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아무도 일을 할 수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선진국들이 할 수 일들이 국경을 막는 일뿐입니다.
인간이 쌓아올린 세계가 얼마나 미력하고 허망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지키지 못한
탐욕에 가득한 인간으로 인한 것임을 회개하며 간절히 비오니,
이 혼돈의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귀를 열어주십시오.
이 불확실함 속에서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
이 혼돈과 불확실함이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공회 영주교회 천제욱 신부의 기도>
[사순 4주일 설교말씀 - 유튜브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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