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기억주일 본기도 -
“ 기도합시다. 주님께서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7년 동안 계속된 이 땅의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시나이다. 간절히 구하오니,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고이 품어 주시고, 유가족들을 위로하시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세워지게 하소서.”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가득 안고 평화를 일구어 가는 증인!
지난 며칠 꽃샘 추위 같은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코로나19 감염도 계속 되고 있는데, 교우 여러분 모두 건강하신지요?
4월은 짓궂은 날씨처럼, 봄꽃의 화사함에 취하기에는 아픔이 많은 계절입니다. 제주의 4.3, 엊그제 4.16 세월호 참사, 그리고 4.19.
7주기를 지낸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아, 유가족들은 여전히 절규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 진상 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희생당한 영혼들과 유가족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들은” 누구일까요?
33절에 나옵니다. 엠마오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11제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34-35절입니다. 열 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엠마오 두 제자도 그들이 주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움과 절망으로 주저앉아 있는 제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켜 세우셨듯이 제자들을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증인으로 일으키시고자 함입니다.
엠마오 두 제자 이야기를 보면,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27절,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30-31절, 30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성목요일에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고 명하시며 성찬례를 세우신 이유입니다. 말씀과 성찬으로 예수님을 기억하고 선포할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오늘 부활3주일 감사성찬예배의 본기도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하느님, 부활하신 주님께서 빵을 떼실 때에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았나이다. 비오니,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어 지금도 세상 속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을 드러내게 하소서” 오늘 감사성찬예배를 드리는 우리 가운데 이 은총이 임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도록 명하신 과월절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느님을 기억하여 하느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지켜 가도록 기억 장치였습니다.
전례의 기억의 장치입니다. 기억을 통해 사건과 인격이 살아납니다. 기억이라는 말의 영어 단어 Remember의 의미가 그렇습니다. 기억하는 인격과 사건이 내 삶에 ‘다시(Re)’ 자리매김(member)하는 것입니다. 기억 가운데 살아나는 인격은 나로 그가 살았던 삶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그래서 기억이 중요합니다. 416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행동하겠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기억을 통한 다시 살아남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스토리를 이어갑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제자들의 기억과 되물음 가운데 살아났다는, 소위 말하는 영적인 부활, 실존적인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39절,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41-43절, 41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예수께서는 "여기에 무엇이든 먹을 것이 좀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예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다.
영적인 부활은 여러 종교에서도 말하는 것입니다. 윤회도 이런 부활의 하나입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이 영으로 부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37절,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무서워서 유령을 보는 줄 알았다.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영지주의라고 합니다. 영은 우월하고 육은 열등한 것으로 여기는 이원론으로,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을 목적으로 합니다. 오늘날 신천지같은 집단들입니다.
죽음 이후 영생만을 구원으로 여기는 영지주의 신앙은 이 땅의 문제를 외면하게 만듭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이제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비난합니다. 군부의 총칼에 죽어가는 미얀마의 국민들의 민주화의 외침에 무관심합니다.
한국기독교가 이렇습니다. 교리적으로는 몸의 부활은 믿지만, 실천적으로 신천지 같은 이단과 다름없는,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 집단이 되어 쇠락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으로 오신 예수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피조세계를 애정하시는 창조주 하느님을 알게 합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느님의 관심은 인간의 죄로 깨어진 이 세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몸으로 오시어 사람들 가운데서 사시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환대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몸으로 오시고 몸으로 다시 사신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48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느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으니, 예수님이 죽음 당하게 된 원인인 하느님 나라 운동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이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인사말-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을 성취해 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가득 안고 평화를 일구어 가는 삶이 증인의 삶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때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안전한 산업현장과 적절한 노동의 대가를 보장 받을 때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소수자들은 배제와 차별이 없는 세상이 될 때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총과 칼로 백성을 억누르고 죽이는 군부 세력이 물러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의 표지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평화의 사도로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느님이 계시기에, 반드시 세월호 참사 진상이 규명되는 그날, 미얀마에 민주화의 봄이 오는 그날이 와 평화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성프란시스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함께 드리고 미얀마 신부님의 증언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성프란시스 평화의 기도
주여, 우리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는 사랑을, 모욕이 있는 곳에는 용서를,
불화가 있는 곳에는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는 믿음을 보이게 하소서.
절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을, 어둠 있는 곳에는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는 기쁨을 보이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이는 우리가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신을 온전히 버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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