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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하느님께서 가정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

by 분당교회 2021. 5. 9.

지난 수요일은 어린이 날, 어제는 어버이 날이었는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희 집에는 어린이도 없고 부모님도 다 돌아가셔서 좀 허전해 시를 읽으며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손

뜨겁던 내 이마를 서늘히 짚어주고

찌르듯 아픈 배를 시원히 쓸어주던

어릴 적 어머니 손이 약손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서 외갓집 가던 길에

굽이굽이 돌아가던 무서운 그 산길도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따라가곤 했습니다

어머니 손을 놓고 걸어 온 길 얼마인가

넘어지고 쓰러질 때 날 잡아 일으키며

예까지 인도한 것도 어머니 손입니다

 

우리 교회 어버이되시는 70세 이상 어르신들께 뭘 선물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타고르 시인의 “말보다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나무에게 물었네 

 하느님에 대해 얘기 해달라고 

 그러자 나무는 꽃을 피웠네

 

 사람들은 말했네 

 신이 있다면 보여 달라고

 그러나 나는 많은 말을 할 뿐

 꽃 하나 피우지 못했네

 

 많은 말보다 꽃 피운 삶이기를

 많은 일보다 꽃 가꾼 삶이기를

 많은 돈보다 꽃 나눈 삶이기를

 그래 그렇게 꽃내음 날리며 살래

 꽃 한 송이 피우며 살래

 

그래서 지난 월요일에 헌릉화훼단지에 가서 꽃을 사와, 주중에 어르신들 댁으로 방문해, 현관에서 꽃을 드리고 기도해 드리고 왔습니다. 

 

참 오랜만에 어르신들 집을 방문했습니다. 송인석 앵니스 교우님 댁은 안토니오님이 투병 중이실 때 자주 방문했었는데, 돌아가시고는 처음이었습니다. 방문하니까  기억이 되살아나고 안토니오님이 그리워지고 기도하면서 주님 안에서 상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블 카운티에 계시는 윤경희 헬레나님은 백신 덕분에 로비에서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헬레나님과 가끔 통화하며 근황을 나누곤 했지만, 우리 교회 예배 한 번 오셨을 때 뵙고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잠깐이지만 대화 나누고 기도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말씀이요 하느님의 책”이라고 했습니다. 나무들이 싱그러운 초록빛을 발하고 예쁜 꽃들이 가득한 이 계절에 가족과 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보 2면에 기도서 혼배성사 예식문 중 일부를 실었습니다. 결혼과 가정에 관한 성서적 가르침을 비교적 잘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혼배성사 권면의 말씀과 기도대로 살아가는 성가정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의 개념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여 가정을 이루어지는 것이 전통적인 이해지만, 이제는 싱글 맘이나 싱글 파더 가정, 조손 가정, 사유리의 예처럼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하여 이루어지는 가정도 있습니다. 자녀의 성도 아빠가 아니라 엄마의 성을 따라도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 가운데 진짜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노라 에프론이 한 말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같은 요리로 식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도 있는데, 바쁘게 살도록 몰아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가족과 함께 같은 요리로 식사하는 시간을 갖고 계신지요? 

 

식탁공동체는 복음서가 보여주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입니다. 그래서 함께 예수님의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고, 같은 음식을 나누는 애찬이 있는 교회를 하느님의 가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가족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을 확인하는 성찬과 애찬을 멈추게 했습니다. 인류가 하느님의 책인 자연을 파괴함으로 스스로 초래한 것이니,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밥상공동체를 함께 할 수는 없어도 문자를 주고받고, 전화로 서로 안부를 나누며,  온라인으로 교제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공동체성을 확보해 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번 주 목요일 승천대축일부터 성령강림주일까지 진행하는 9일기도에 적극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가정은 천국을 경험하도록 하느님께서 친히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그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좋은 선물이 있습니다.  

 

오늘 1독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44절,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성령이 모든 청중에게 내려오셨다.” 

 

네, 성령님이 하느님게서 가정과 교회에 주시는 좋은 선물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청중’은 베드로가 집회에 가서 설교할 때 모인 교인들?이 아닙니다. 고르넬이오 가족입니다. 고르넬리오는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입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10장 2절을 보면 그의 됨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어서 온 가족과 함께 하느님을 공경하고 유다인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며 하느님께 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를 향한 하느님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사도 10:3, “천사는 ‘하느님께서 너의 기도와 자선을 받아들이고 너를 기억하고 계신다.’” 

 

여러분의 가정이 온 가족과 함께 하느님을 공경하며 자선을 베풀고 기도함으로,  하느님께서 기억하시는 성가정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르넬리오 가정을 주목하신 하느님은 그 가정으로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게 하시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게 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중에 고르넬리오 가정에, 오순절 제자들에게처럼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이 세우신 공동체에 주시기 원하는 선물은 성령님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확증하십니다. 루가 11:9-13, 9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12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3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베드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 2:38,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왜 성령님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되는 걸까요? 

 

오늘 서신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6절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뿐만 아니라 세례도 받으시고 수난의 피도 흘리셨습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예수님이 우리 인간과 같은 몸으로 오신 하느님이시고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구원자이심을 깨달아 알고 믿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하게 됩니다. 나를 하느님의 자녀 삼아주시고자 독생성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감격하며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사랑을 알기에 오늘 서신 2절 말씀대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2절,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계명’이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말씀하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새 계명입니다. 요한 15: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가족들 끼리도 ‘서로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 방식대로 사랑하기 일쑤입니다. 있는 모습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래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랑의 한계는 삼세번이 됩니다. “셋 쉬는 동안 말 들어.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반.......셋, 빵!” 저는 이랬습니다. 

 

“서로”의 범위도 혈연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흔히 가족이기주의라고 하죠. 가족끼리는 그래도 사랑하는 것 같은데, 친척, 친구, 교우들은 “서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여기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삶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내 안에 사랑의 능력이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 머리로는 아내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친절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내 안에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짐으로 느껴집니다. 부담이 됩니다. 죄책감을 줍니다. 죄책감이라도 느낀다면 다행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무뎌지고 무관심해집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능력이 샘솟습니다.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결코 무거운 짐이 되지 않습니다. 1요한 5:3,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시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전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해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는 성찬례로 하느님을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루가 11:13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가득히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에페 5:18,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고르넬리오의 가정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어,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신 하느님은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도 동일한 축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오직 성령님이 이 사랑을 살게 하십니다. 

 

사랑 없음을 인정하고 사랑이신 하느님께 나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우리 가정과 교회를 통해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장해가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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