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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사순3주 강론초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20.

다해 사순3주: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루가 13:1-9)
 
사순 세 번째 여정에서 우리는 열매를 맺으라고 재촉하시는 주님과 맞닥뜨립니다. 지난주엔 성전이 우리 존재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는 ‘무화과나무’라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유다교 신비주의에서 우주의 무화과나무란 거꾸로 서서 뿌리를 영의 하늘에 드리우고 정신의 줄기를 거쳐 보이는 현상계에 잎과 열매를 드러내는 식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심으신 무화과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제대로 자라고 열매를 맺으려면 영성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영이시니(요한 4:24) 우리 안의 영성이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느님, 곧 내주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 이분 성령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 있게 하는 것이 영성에 뿌리내림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몇 년을 교회 문턱을 밟지만 여전히 하느님 따로, 나 따로이기 일쑤인 우리 삶의 모습에 찬물을 끼얹는 사순 3주인 것입니다.

옛날 바리사이파의 율법주의 신앙에서 현세적 축복은 하느님 사랑의 징표요 현세적 재난은 징벌의 표시였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이 곧 기복신앙입니다. 그 관점에서 볼 때 빌라도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이나 탑이 무너지는 사고로 비명횡사한 사람들은 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관점을 뒤집습니다. 너희도 삶의 방향을 틀지 않으면 진짜 멸망, 영적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요. 어느 성서학자든 현세적 축복과 징벌관이란 바리사이들의 것이지 예수님의 관점이 아니라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어쩌다 한국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닮기보다는 바리사이를 이토록 닮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난을 거치지 않는 부활이 없듯이 우리 삶의 이런저런 고통을 수난의 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는 만남의 지점들입니다. 회개란 방향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이렇듯 돌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회개요 영성의 열매를 맺게 하는 전환일 것입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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