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5주:
예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요한 12:1-8)
금년도 사순절 5주간의 복음을 훑어보면 대략 이러합니다. 첫 주에 우리는 유혹을 맞이하시는 주님, 둘째 주에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하시는 주님, 셋째 주에 무화과의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하시는 주님, 넷째 주에 하느님은 엄하게 벌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애로우신 아버지와 같으니 어서 돌아서라고 권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주에는 사랑의 향유로 십자가를 지는 주님을 사랑하라는 권면을 듣습니다.
이 다섯 주간을 하나의 맥으로 읽는 문법은 아마도 이러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해서 나란히 길을 걷지 않으면서 복이나 구하는 신앙은 애초에 바리사이의 것이었지 성 바울로도, 복음서도 도무지 낯설어할 관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들어가기로 합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유혹과 맞닥뜨리는 주님 옆에 우리는 나란히 서서 자신은 어떤 유혹을 받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도 자신이 사랑 받을 만한 존재임을 입증하려고 헐떡거리는 욕망과 탐심의 유혹을 만나고 있기 십상입니다. “여우 헤로데”는 무엇보다 자신 안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그 세상의 왕처럼 자기 세계에서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존재들입니다. 현세적 재앙을 겁내는 것 못지않게, 아니 더 자기 인생에서 본질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사순절입니다. 그러나 먼 지방으로 가버린 탕자처럼 제 아무리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어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 깨달은 시점 및 지점에서 우리는 바로 돌이킬 수 있음을 복음서는 일깨워줍니다.
그럼 사순절 말미에 복음서는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죄가 슬프거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라”고 교회의 신비가들은 늘 권유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난을 기꺼이 맞이하시고 십자가를 받아들이시는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만이 그리스도교 구원의 길이라면 나 또한 주님처럼 자아의 수난과 죽음을 수용해야 구원입니다. 집안에 가득 찬 유향 냄새처럼 우리 존재의 내면은 사랑의 향기로 가득차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수난에서도 주님과 기꺼이 일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주엽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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