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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부활주일 강론초 <부활하신 예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20.


다해 부활주일:

                                        부활하신 예수(루가 24:1-12)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무언가 범상한 인간의 상태와는 같지 않은 초월적 차원을 이루셨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렇듯 초월적인 그리스도를 온전한 인간의 표상으로 보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오랜 신앙입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그 의미를 음미하든지 우리 범상한 인간도 그분과 같은 의식, 존재의 차원으로 상승하여 자신을 완성할 소명이 있다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난다’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은 영이시니 우리의 핵심적 정체성을 영성에서 찾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본디 그러한 존재이므로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말씀으로 산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내면의 영성을 찾아서 새로운 ‘나’로 살게끔 변해가는 과정을 싸잡아서 동방교회에서는 ‘신화’divinization이라 했고 서방교회에서는 ‘성화’sanctification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초월적 차원의 완성을 드러내신 부활의 주님이 육체적 차원 즉 뼈와 살을 그대로 갖고 계십니다. 게다가 먹을 것을 잡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초월을 육체와 정신의 차원을 넘어서 영의 차원으로 가는 것이라 보통 말하는데 영의 차원으로 초월했어도 부활의 주님께는 하위의 차원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게다가 먹을 것을 잡수시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를 온전히(그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닮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주님이 몸 차원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에 우리가 닮아야 할 무엇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높은 영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관계성 차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영성을 추구한답시고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포장하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자신의 실상을 감춘다는 의미에서 ‘거짓 영성’이라고도 하고 다뤄야 할 문제를 회피하고 우회하려든다는 의미에서 ‘영적우회’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부활 후에도 하늘의 천사 같은 모습만 보여주시지 않고 땅의 요소 즉 뼈와 살도 만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가히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모습이요 그것이 인간의 본래적 모습이요 완성인 것입니다. 그러니 영성을 추구한다고 몸을 등한시해서도 안 되고 해소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와 욕구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나타나고 드러날 때마다 수시로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인간다운 여정입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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