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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인물시리즈 : 버너 도지어(Verna J. Dozier 1917~2006): 평신도 선교를 재정의해 준 여성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2. 14.


성공회의 영성가들 하면 대개 과거 영국의 성직자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99퍼센트 이상이 평신도이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여성입니다. 성공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게다가 오늘날 세계성공회 신자의 절반 이상은 아프리카 흑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이 아닌 미국의 평신도 여성이자 흑인인 버너 도지어는 20세기 이후의 성공회를 생각하기 좋은 이미지가 아닐까 합니다. 도지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평생 살면서 공립학교 교육에 이바지한 교사요 행정가입니다. 한편 성서연구와 성서세미나를 이끈 평신도 성서신학자이기도 합니다. 버너 도지어는 파킨슨씨병으로 20069188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워싱턴에서만 3대째 살아온 토박이 집안의 딸로서 도지어의 어머니는 경건한 침례교인이었고 아버지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회의주의자에 불가지론자로서 늘 교회의 위선을 비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양친부모에게 도지어는 경건함과 의심을 서슴지 않는 마음을 둘 다 물려받았습니다. 도지어 자신 후일 집안의 분위기를 멋진 혼합물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aith seeking understanding)이 켄터베리의 안셀무스의 모토였듯이 성공회는 이성과 신앙의 통합을 늘 꾀합니다. 이렇게 보면 도지어의 집안 분위기 자체가 다분히 성공회적이었다 할 것입니다. 도지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워싱턴의 하워드대학(흑인 하버드대학이라 불리는 흑인 주류의 명문)에서 진보적인 신학자들의 설교를 듣곤 했습니다. 도지어는 후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예수의 신성을 의문시하는 설교를 처음 들은 곳도 거기고 그러고도 채플이 무너지지 않더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던 곳도 거기였다. 아버지와 나는 그 설교들을 그냥 들이 마셔버렸다.”

도지어가 성서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이 되어 성서를 성탄선물로 받았을 때부터입니다. 당시 도지어는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이나 통독을 해보지만 별로 와 닿는 바가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도지어는 후일 성서란 책은 체계적인 방식으로 공부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평신도 설교자이기도 했던 도지어는 한 설교에서 성서는 대충 봐서는 아주 잘못 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체를 깊이 봐야 합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자신 성경공부와 세미나를 이끄는 사람이 된 데는 이런 경험과 이해가 작용했다고 봐야겠지요. 평신도가 자기 가정과 일터에서 사역자로 살아가려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야 하는데 이 정체성이란 성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도지어가 볼 때 성서를 모르면서 이 세상에서 힘 있게 하느님 나라의 사목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룹이 성경공부를 할 때 도지어가 제시한 방식은 이러합니다. 여러 번역본과 주석을 준비해서 세 단계로 공부하는데 (1) 본문이 말하는 주요단어와 개념의 의미를 이해할 것, (2) 본문이 최초의 청중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탐구할 것 즉 그들이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이 본문이 그들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었을지 이해할 것, (3) 본문이 오늘 자신과 교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묵상할 것. 이때 (1)(2)의 단계에서는 정확한 이해를 추구해야 하겠지만 (3)의 단계에서는 그룹 구성원 각자에게 와 닿는 의미를 중시하고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하도록 조언합니다.

도지어는 성서를 법규집도 아니고 매일 매순간의 정답을 말해주는 책도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성서를 그런 책이라면 거기서 나오는 신앙은 역동적이지 못한 죽은 게 됩니다. 성서의 저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성 있는 인물들로서 자기 인생과 세상에 하느님이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나름으로 이해하고 거기 응답했던 사람들입니다. 거기엔 깊이 숙고하고 때론 잘못을 통해 성장하는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서의 문자적 기록을 절대화 하는 것은 성서문자를 신으로 삼는 우상숭배라고 도지어는 보았습니다. 성서를 이렇게 볼 때 신앙은 본질적으로 모호한 데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실재이듯 우리가 이해한대로의 신앙은 원래 제한되고 모호합니다. 그래서 도지어는 내가 오늘 아는 것보다 내일은 더 많이, 다르게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상상도 못했던 내일의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열라고 합니다.

도지어는 평신도 성서학자로서 성경공부 세미나를 이끄는 한편으로 평생 평신도의 권한과 사목을 대변해 온 인물입니다. 신자 혼자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신자를 준비시키기(Equipping the Saints)라든지 평신도의 권한(The Authority of the Laity), 형제자매들: 성서적 공동체를 회복하기(Sisters and Brothers: Reclaiming a Biblical Idea of Community) 등이 다 미국성공회가 귀하게 여기는 도지어의 저작들입니다. 도지어 자신이 제일 좋아한 책은 하느님의 꿈: 돌아오라는 부르심(The Dream of God: A Call to Return)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도지어는 종교지도자들이 영성만 말하고 사회정의를 외면하는 모습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신자들도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만 삼지 삶과 실천으로 따르지는 않는다고 꼬집습니다.

버지니아 신학교의 학장 마사 혼(Martha Horne)은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도지어는 평신도 사목이 무엇인지 일깨운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말과 글로써 평신도들이 세례 때 받은 권한을 갖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신앙을 따라 살라고 일깨운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도지어 자신 공립학교 교육에 이바지한 32년 세월을 접고 교회에서 성경공부 그룹을 이끌자 어떤 사람들이 도지어 여사가 사역을 시작했다는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도지어는 얼른 아니, 사역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라고 받아쳤습니다. 평신도로서 자기 사목은 이전의 교육가로서 뿐만 아니라 성경공부 인도자의 역할로 계속되고 있을 뿐이라는 의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때까지 일반적인 인식은 사목이란 그저 성직자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일반신자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지내면 그만이고 사목이니 사역이니 하는 것도 그저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거나 주일학교 교사가 되는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도지어에게 사목이란 모든세례 받은 신자들이 하는 것이며 대개는 교회 밖에서 하는 무엇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있은 일이 월요일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주일의 활동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도지어는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그 좋은 목소리를 성서나 셰익스피어의 운율에 젖은 버릇으로 맛깔나게 성서세미나를 했으니 얼마나 반응이 좋았겠습니까! 그런 목소리로 도지어는 평신도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하는 일이 곧 사목이 되어야 하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는 다만 연료를 재충전하는 것이라 외쳤던 것입니다.

평신도의 권한에서 도지어는 교회의 역사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이어야 할 교회가 제도요 기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불러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느님의 꿈을 함께 꾸면서 신앙을 부정하는 이 세상에서 위협을 무릅쓰고 살게 하셨다. 그런데 교회가 기구가 되면서 기구가 늘 그렇듯 자체유지를 목적으로 삼는 기구로 전락했고 신앙의 모호함과 모험을 확실한 규범과 도그마, 완고한 조직으로 대체하고 만다...” 요즘은 성공회뿐만 아니라 많은 교파들이 모든 세례 받은 신자, 하느님의 백성의 선교라는 성서의 본래적인 개념,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이래 그리스도교 역사의 더 긴 세월동안 상실했던 이해를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설사의 치료가 변비가 아니듯 성직의 전횡을 성직의 무력화로 대응하는 것이 평신도의 권한회복은 아닙니다. 모두가 제3의 방향, 하느님의 백성의 선교로 어떻게 나아갈지 멈추어 생각해 봅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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