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렝글은 아동 및 청소년 대상 소설로 우선 유명한 미국의 여류작가입니다. A Wrinkle in Time이라는 소설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Newbery Medal)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렝글은 선뜻 아동문학가라는 딱지를 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판타지나 공상과학 분야 서가에도 렝글의 책이 꽂혀 있고 자서전, 시, 일반소설 분야에서도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영성에 관한 책들도 썼습니다. 이렇게 쓴 책이 50여 권에 달하는 다작(多作) 작가가 매들린 렝글입니다. 희한하게도 렝글의 선배격인 도로시 세어즈나 C S 루이스나 넓은 분야에 걸쳐 글을 썼다는 특징을 공유하며 당연한 얘기겠지만 독자층도 다양해서 아동과 성인을 망라하는 것을 물론 신자와 비신자들이 다 읽는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또한 무언가 인간경험의 여러 면을 포괄하고 존중하는 성공회 영성을 드러내는 특성이라 여겨집니다. 흔히 성공회는 ‘큰 하느님’(Big God)을 믿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어느 교부의 말처럼 “하느님의 원은 어디나 중심이고-즉 중심과 변두리로 나뉘지 않고-그분께는 먼 곳이 없다”는 식이어서 인간 삶의 어느 구석이든 하느님 안에 있는 걸로 보려는 너른 시야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가 그러하듯 매들린 렝글의 작품도 어느 분야의 것을 보든 그리스도교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지요.
무엇보다 렝글은 이야기꾼입니다. 어떤 것을 명제로 진술하는 것보다 이야기로 담아낼 때 훨씬 풍성하고 다차원적이 됩니다. 명제적 교리로 복음을 말하는 현대교회와는 달리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명제는 머리만 자극하지만 이야기는 우리 존재의 여러 차원에 접속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의미를 열 사람에게 물으면 열 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각자가 나름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고 모두가 옳습니다. 이야기는 듣는 이의 상상을 자극해서 의미는 듣는 이가 이야기와 하나가 되는 데서 우러나옵니다. 렝글은 하느님도 진리도 이렇게 모호한 듯해도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는 것이 훨씬 참되며 성서적이라고 믿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시나 이야기처럼 모호하고 미묘하지만 의미의 다차원, 경험의 전체성을 포괄하는 접근이 ‘성공회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 자체도 단정적인 교리는 별로 없고 하느님이 이렇게 하셨다 혹은 저렇게 하셨다 하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예수님도 자기 가르침을 교리가 아니라 이야기로 풀어내셨습니다.
렝글은 부유한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납니다. 몇 번이나 유산한 끝에 태어난 딸이라 렝글은 부모에게 큰 기쁨을 주었지만 부유층 부모는 이미 나름대로의 활동과 생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렝글은 상대적으로 외롭게 자랍니다. 뉴욕에서 태어나 플로리다로 갔다가 외국에서도 오래 생활하는 등 가족의 이동경로를 따라 지내면서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렝글은 책을 벗 삼아 지냅니다. 그렇게 늘 책을 읽는 한편으로 글도 이것저것 써보는데 렝글이 처음 이야기를 지어 쓴 것이 다섯 살 때고 일기는 여덟 살 때부터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줍고 뻣뻣해서 어떤 선생들은 렝글이 멍청하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렝글의 양육방식을 놓고 늘 다툰 부모의 영향 때문에 앉지도 서지도 못한 엉거주춤함이 어린 렝글에게는 있었는가 봅니다.
여하튼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한 렝글은 뉴욕에 정착해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거기서 첫 책 The Small Rain을 내고 그 다음해 배우 휴 프랭클린(Hugh franklin)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배우 일이 끊기자 부부는 코네티컷 북서부의 2백 년 된 농가를 구입해 거기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한편 렝글을 글 쓰는 일을 계속합니다. 여기서 딸 조세핀도 출생하고 몇 년 뒤엔 친구 부부가 사고로 죽자 그 딸을 입양해서 키웁니다. 이곳에서의 가족생활이 외롭게 자란 매들리 렝글에게는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렝글의 부모는 딸에게 원하는 뭐든지 하라고 장려하긴 했지만 문제는 늘 렝글 혼자 씨름했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렝글의 글에선 늘 가족이 중요합니다. 렝글 자신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글쓰기도 접고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려 애썼습니다. 후일 여성주의자들이 렝글도 자신들과 같은 부류로 쳤지만 렝글은 남자도 전업주부도 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드러내서 말하지 않아도 렝글의 글에서 이런 면은 놓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렝글 자신은 아동문학가란 호칭에 저항감을 표시했지만 그래도 렝글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건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소설이었습니다. 특히 A Wrinkle in Time은 어른들에게도 인기를 쓴 작품으로서 건강하게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시공을 넘나들면서 선과 악 사이의 우주전쟁에 관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초자연적 실재를 믿는다고 말한 바 있거니와 렝글은 과연 여러 초자연적 존재들을 이런 작품 속에 담습니다. 그런가 하면 당대에 막 등장하기 시작한 아인슈타인이나 플랑크의 새로운 물리학을 아동서적에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렝글이 여러 분야에 이야기를 쏟아낼 때 늘 성서가 자원의 광맥 구실을 합니다. 거기에 미드라시(구약에 대한 고대 유다인들의 주해서)까지 곁들이는 한편으로 현대과학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렝글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리저리 비벼 옛 이야기들이 현대판으로 새 생명을 얻고 다시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렝글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성서적 메시지를 뜻밖의 장면과 상황에서 말하곤 합니다.
렝글은 성서가 깊은 진리를 담고 있지만 문자적 사실을 진술하는 책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성서의 이야기, 드라마, 시를 사실의 역사로 혼동하는 것은 “사탄의 가장 교묘한 책략”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문자주의는 하느님을 영 잘못 이해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결국 문자 자체를 하느님으로 삼는 우상숭배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시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성공회 영성은 이렇듯 성서 문자주의와는 늘 긴장관계를 이룹니다. 성공회가 성서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독사를 쥐고 독약을 삼키는 식의 열광적 신앙을 낯설어하는 이유, 성서도 성서지만 의미는 늘 성서를 읽는 사람의 경험과 만나는 맥락에서 다양하게 결정된다는 태도, 그래서 성공회의 늘 ‘깊이 들여다보려는 듯한’ 기풍은 성서를 이야기와 은유로 읽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우러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자 너머의 하느님과 제대로 관계 맺는 길은 시와 상징, 신화와 이야기를 통해서라고 보는 것입니다. 성공회 영성가들에 유독 시인도 많고 이야기꾼도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할 것입니다.
모호함이나 신학적으로 결론을 선뜻 내리지 않는 태도를 흑백논리의 강한 고백적 신앙에 익숙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낯설어합니다. 물론 작가와 이야기꾼으로서 매들린 렝글에게 조목조목을 논리적으로 종결짓는 조직신학적 내용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호함과 결론유보가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관계에 본질적이라 보았던 렝글의 이해는 그대로 성공회풍이라 할 수 있으며 성공회가 단일한 입장의 조직신학 혹은 교의신학을 잘 내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불안한 세상에서 유목민처럼 떠도는 현대인에게 불안을 벗어난 듯이 보이는 강한 주장과 교리는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아마도 근자에 근본주의의 부흥은 그런 각도에서 설명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날 선 교리와 배타성에 영혼을 베인 사람들은 렝글이 보여준 것과 같은 성공회 영성의 너른 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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