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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의 전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4. 30.


제목: “성공회의 전통”
대성당 사순절 강좌  /  이주엽 신부(분당교회. 성공회대 영성신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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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은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성탄과 부활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 사순입니다. 성탄 때 우리는 “성탄 축하합니다” 하는 인사를 나눕니다. 부활 때도 “부활 축하합니다” 하고 인사합니다. 무슨 기념일을 축하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하느님의 빛과 생명을 내적으로 깨달았음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다만 성탄이 씨앗이라면 부활은 나무와 같은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씨앗이 싹이 터서는 온갖 비바람과 계절을 견디면서 큰 나무로 모습을 드러내듯 성탄은 사순을 통과하면서 부활생명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전례의 절기는 바로 그 진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탄의 빛, 성탄의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것은 존재선언입니다. 그렇게 우리도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맘에 드는 존재로 자각하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참 자기임을 깨닫는 것이 성탄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닮은 의식이 탄생했으니까요. 사순의 의미는 여기서 드러납니다. 사순은 광야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거기서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유혹의 본질이란 바로 “당신이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즉 세례의 존재선언을 흔들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당신이 정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하는 유혹의 음성을 줄곧 만납니다. 그런 유혹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각성하고 함께 견뎌내는 것이 사순의 여정입니다. 그래야 우리 안의 하느님의 생명 즉 영성은 씨앗에서 나무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 사순의 여정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한 공동체로서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디 복음서란 한 신앙공동체가 자기네가 처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경험한 기록입니다. 예컨대 마태오복음이라면 마태오의 공동체가 예수님 제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찰한 기록인 것입니다. 거기엔 70년 유다전쟁으로 성전으로 무너지고 난 다음 어떻게 가는 것이 하느님의 백성을 재건하는 길인가 바리사이파와 경쟁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도전과 희망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도 한국에서 이 작디작은 한 신앙공동체로서 대한성공회가 그리스도와 사순의 여정을 걷는다는 것, 한 공동체로서 광야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 그 의미를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순절은 고독과 결핍, 침묵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광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광야라는 이미지도 그렇거니와 고독과 결핍이라는 단어도 무언가 우리 가슴에서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한 줌도 안 되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우리네 작은 교회는 돈도 자원도 인물도 좌우간 많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외롭고 결핍된 교단 같아 보입니다. 우리 안에서도 교단의 미래를 염려하는 많은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오늘 강의 제목이 “성공회의 전통”인데 이와 관련해서도 한 목소리는 “성공회의 전통이란 구태의연하고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니 빨리 다른 교단처럼 되자”고 합니다. 또 한 목소리는 “성공회의 전통이란 것을 밖에서 듣고 그것 때문에 왔는데 와서 보니 그 실체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한 공동체로서 우리 집단의식은 유혹의 음성을 걸려듭니다. “너희가 정말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맞아?” 하고 말입니다. 자기 정체성 혼란에 빠진 사람이 목적의식과 활력을 드러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한 교단으로서 우리도 그런 혼란과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성공회의 전통이란 무엇입니까? 19세기 말에 전해진 선교사들의 유산인가요? 우리가 지난 한 세기 이상을 경험해 온 성공회가 성공회의 전통인가요? 도대체 성공회가 말하는 성서-전통-이성이라는 삼각 축은 무엇이고 그 안에서 전통이란 무엇일까요? 클래식 앵글리카니즘 즉 고전적 성공회의 대답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우선 성공회개혁의 첫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토마스 크랜머(1489-1556)는 대륙의 종교개혁가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모든 진리는 성서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교황이 아니라 왕이 국가와 교회의 수장이 되는 게 맞다고 보았습니다. 성서에 교황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지만 경건한 왕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크랜머는 사실 개혁을 추구하면서도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영국 땅의 교회가 보다 순수하게 성서적이고 초대교회적인 모습을 회복하길 원했습니다. 여기에 성서-전통-이성이라는 성공회풍의 맹아가 들어 있습니다.  

존 쥬얼(1522-1571) 얘기를 들어보지요. 16세기의 경우 어느 세력이든 진리의 출처로서 성서의 권위는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성서가 말하는 바가 무엇이고 누가 그 뜻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놓고는 크게 둘로 입장이 갈렸습니다. 하나는 로마교회의 입장으로 교회가 성서해석의 권한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때 교회란 교황을 정점으로 한 성직자계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의 입장으로 개별 그리스도인과 공동체가 성령의 안내를 따라 성서를 해석할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로마교회는 1545년 이래 트렌트 공의회의 이름으로 산발적으로 모여 영국교회를 줄곧 이전에 없던 짓을 하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1559년 11월 26일, 영국에 돌아와 있던 존 쥬얼은 “도전하는 설교”(Challenge Sermon)라는 제목으로 로마교회를 향한 반격의 포문을 엽니다. 이 설교에서 쥬얼은 로마교회의 오류 스무 댓가지를 열거합니다. 대개는 미사와 관련하여 사제가 사적인 미사를 집전한다든지 평신도에게는 포도주는 주지 않고 빵만 준다든지 성체거양을 우상숭배적으로 한다든지 하는 문제를 꼬집습니다만, 무엇보다 교황이 보편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주장, 평신도는 성서를 읽지 못하게 하는 것, 평신도가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 등을 공격했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이 성서에도, 아직 분열을 경험하지 않았던 초기 6세기 동안 공의회나 초대교부들 저술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니 만약 근거를 댈 수 있거든 대 보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그러니 정작 “이전에 없던 짓을 하는 이단”은 로마교회가 아니냐고 공격한 것입니다. 

“변론”에서 쥬얼은 역사적 신경에 근거해서 영국교회를 옹호했고 삼성직(주교-사제-부제)에 대해 언급할 때도 성서 어디에도 한 주교가 다른 주교들 위에 군림해도 좋다는 증거가 없으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일 뿐 일개 피조물이 “귀에 달콤한 말을 노래하는 기생충들로 둘러싸이지 않는 한” 감히 자신을 그 위치에 둘 수는 없다고 공격합니다. 이어 사제의 결혼, 성찬례를 둘러싼 교리 등 성공회의 입장을 변론하면서 영국교회는 초대교회의 관습을 회복한 것이지 로마의 주장처럼 이전에 없던 것을 교회에 들인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로마교회야말로 성서와 초대교회에 없던 짓을 하는 교회라고 꼬집습니다. 역시 초대교회의 관습에 근거하여 영국의 교회는 지역의 시노드를 통해 스스로를 개혁할 권한이 있다고 성공회 개혁이 불법이라는 주장을 일축합니다.  

대륙의 종교개혁가들과 마찬가지로 존 쥬얼 역시 성서가 교회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믿을지 궁극적 출처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의 권한 역시 교황이나 주교들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의미가 늘 자명한 것은 아니라고, 따라서 해석이 필요하다고 짚는 점에서 극단적 종교개혁가들과 쥬얼은 차이가 있습니다. 쥬얼이 자꾸 초대교회 교부들이나 공의회의 해석에 기대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즉 어떤 해석이 분명치 않을 땐 그리스도와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해석을 보라는 것이지요. 그에게 중세교회는 “온갖 잡다한 무법”을 교회에 덧붙인 불순한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믿을지 논란을 벌일 때는 성서와 더불어 초대교회가 성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후대의 성공회 사상가들은 늘 존 쥬얼이 명시한 이 논거 위에 자기 주장을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존 쥬얼 이전의 토마스 크랜머도 성서와 초대교회 및 이성을 교회가 진리를 판단하는데 기반이라고 했지만 이를 원리적으로 명시한 인물은 존 쥬얼입니다. 한 세대 후에 활약할 성공회의 대표적 사상가 리처드 후커 역시 존 쥬얼 밑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오랜 교회나 대성당에는 쥬얼 당시의 관습을 따라 지금도 그의 변론을 설교강단에 줄로 매어둔 곳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들(로마 가톨릭)을 떠난 것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나 사도들을 떠나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자기네 교회와 우리 교회를 비교해보라 하십시오. 그러면 자신들이야말로 부끄럽게도 사도들로부터 멀리 떠났음을 알게 될 것이고 우리가 떠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변론」에서) 

훗날 존 쥬얼에게서 신학을 배운 리차드 후커(1554-1600)도 그렇고 랜슬럿 앤드류스(1555-1626) 등도 모두 ‘전통’을 처음 1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왜 성공회의 사상가, 영성가들은 초대교회를 중시했느냐 하면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어느 시기와 비교해 봐도 하나 됨의 응집력, 일치성이 돋보인 시기입니다. 교회 최초의 분열을 보통 6세기로 말합니다. 서방의 로마교회가 톨레도 3차 공의회에서 ‘필리오케’ 즉 “성자로부터”라는 구절을 니케아신경에 임의로 삽입함으로써 동방 쪽 교회들의 반발을 삽니다. 그러므로 6세기 이전, 처음의 5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일체감이 갖고 있는, 소위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퀄리티를 지닌 교회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위 가톨릭 즉 “언제 어디서나 일치하는” 이전의 “공번되다”는 표현 속에 담긴 의미입니다. 즉 초대교회는 성서해석과 신앙에 있어 가톨릭성이 존재했던 시기라는 것이고 성공회가 ‘전통’이라고 말할 때는 바로 이 시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전통-이성은 삼위일체처럼 ‘셋이나 하나’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성서가 우리 신앙의 최고 권위이나 성서는 의미가 자명한 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상황과 경험에 맞게 의미를 발견하려면 이성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데 이때 해석과 실천에 있어 어느 때보다 응집성이 있었던 초대교회의 전통과 대화 나누면서 한다는 이 태도, 기풍, 에토스가 바로 성공회적 태도요 성서-이성-전통이라는 삼각 축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현실은 성서를 강조하는 쪽은 거의 성서 문자사실주의적 해석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근본주의와 “성공회는 이성적인 교회야” 하면서 무미건조한 이신론적 신앙을 얘기하는 듯한 입장과 “전통이란 영국 선교사들이 전해 준, 그래서 우리 조부모, 부모님 세대가 경험한 그 성공회”라는 입장이 각각 성서-이성-전통의 한 단어씩을 파편처럼 떼어들고 독백이 난무하듯 하는 현실로 보입니다. 사순절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침묵해 볼 수는 없는지 싶습니다. 자기주장과 고집, 입장의 소리를 접고 침묵 가운데 마음의 시선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돌려보면 “내가 왜 너희를 고독과 결핍의 광야에 보전해 두었는지 뜻이 있단다” 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유혹이 올 때마다 거기 휘둘리며 콩 튀듯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유혹이 유혹인 줄 아시고 거기 응하길 조용히 거절하셨지요. 성공회라는 한 신앙의 공동체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인 줄 확인하는 방법을 우리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데서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내가 나의 참 자기를 찾듯 성공회는 성공회다워야 할 것이고 이때 성공회가 말하는 전통이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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