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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존 웨스터호프의 성공회 신앙의 이해 1_ 서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7. 18.

서론: 성공회다움을 찾는 것이 분파적?

성공회 신자들 중에는 성공회다움을 말하면 불편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스도교라는 넓은 지붕을 말하면 그만인 것을 왜 편협하게 선을 긋느냐는 것이다. 성공회, 천주교, 침례교, 순복음 할 것 없이 경계 없이 넘나들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무경계가 오히려 성공회다움 아닌가까지 말한다. 그러나 일견 가슴 넓어 보이는 이 무경계의 평등주의엔 함정이 있다. “지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적이기만 해서는 오히려 세계적일 수 없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코스모폴리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결국 미국적인 것을 소비하는 모습을 왕왕 드러내듯 무교파의 너른 가슴을 말하는 이들이 결국 다른 교단의 문화를 성공회 내에서 주창하고 소비하는 이들이 되고 만다. 성공회다움을 말하는 것이 편협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자신이 경험했거나 지향하는 어느 교단의 색깔과 문화를 성공회에 채색시키려는 문화적 첨병 구실을 부지불식간에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훈련국(이전 선교교육원)에서 발행했던 「성공회 신앙의 이해」는 존 헨리 웨스터호프(John H. Westerhoff)가 1994년에 출판했고 1998년에 개정판을 낸 A People Called Episcopalians의 일부를 번역한 책이다. 절판되어 새로 낼 필요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덜렁 번역만 하기보다는 저자와 우리 한국 성공회의 현실 사이를 질문과 대답으로 매개하며 글쓰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번역한 책들의 내용이 왜 우리 현실에서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 쉽게 와 닿지 않는 상황이 많음을 고려한 것이다. 애초의 번역 역시 신학생 시절 본인의 작업(마지못한)이었던바 이제 10년 넘게 사제직을 수행한 마당에 새롭게 해설하고픈 책임감도 느꼈다. 존 웨스터호프 신부는 본디 미국 UCC(the United Church of Christ)교단의 목사로 십 수 년을 일한 뒤 성공회 사제가 된 이다.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콜롬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히 교파를 넘나들며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500여 개의 글과 34개의 책을 출판한 다작가이기도 하다. 성공회의 교리교육(Catechism)과 신자양육(formation)에 관심이 많은 교육가요 사목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웨스터호프는 서문에서 교회일치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음을 말한다. 예전에는 사회든 교회든 용광로(melting pot) 이미지가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과일바구니(fruit basket) 모델이라는 것이다. 용광로가 이전에 무엇이든 묻지 않고 녹여냈듯이 교회들도 교파와 전통을 묻지 않고 비슷한 점은 강조해도 서로의 차이는 애써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교파를 바꾸게 되는 건 순전히 이사나 결혼 같은 개인적인 이유일 뿐이지 심각하게 어느 교회의 특성과 전통을 고려한 판단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전에 자신에게 익숙했던 교단의 사고방식과 스타일, 문화를 부지불식간에 새로 속하게 된 교회에서도 찾거나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웨스터호프가 말하는 이 대목은 현실로 우리 대한성공회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새롭게 성공회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성공회의 색깔을 덧입기보다는 이전 속했던 교파의 색깔과 관점으로 성공회를 “개혁”하려 들기 일쑤인 것이다. 영성신학에서도 식별을 할 때 어떤 이가 이 집단에 “속하러” 왔는지 “구하러” 왔는지 살피는 것은 중요한 기준이다. 누가 성공회에 와서 이 교회 같지 않은 교회를 보다 자신이 경험했던 교회 비슷하게(예컨대 보다 천주교 비슷하게, 혹은 침례교 비슷하게) 만들고자만 할 뿐 성공회의 전통과 유산에 의해 자신이 양성(formation)되려고 들지는 않는다면 진지하게 “하느님이 당신을 이곳에 부르신 것이 맞는지” 물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웨스터호프의 책이 90년대 중반에 쓰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과 약 15년 정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대략적으로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어떤 문화적 흐름이나 강조점이 그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국사회의 지도층들이 미국 등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사회의 지도층이 되어 영향을 주기까지의 시간차가 그 정도인 탓이리라. 그렇게 볼 때 일치와 연합을 용광로 이미지에서 과일바구니 이미지로 바뀐다는 흐름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고방식의 변화와도 맞아떨어진다. 십 수 년 전부터 미국의 교회들은 교파간의 개성과 전통을 묵살하는 것이 오류며 혼란과 정체감 상실 속에 오로지 경쟁만 남아 오히려 교회일치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듯이 한국에서도 한 박자 늦게 비슷한 각성이 일고 있는 것이다. 교회일치운동의 미래는 각 교파가 고유한 색깔과 정체성을 견지한 채로 더불어 아름다운 과일바구니를 이루듯 하는 데 있다. 이때 사과는 사과다워야 하고 포도는 포도다워야 한다. “사과도 포도도 아닌 것이”는 그 과일바구니의 미와 완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과일바구니 모델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사실은 초대교회가 이미 그렇게 다양했고 지금도 한 교단을 들여다보면 그 모델이 엿보인다. 웨스터호프가 지적하고 있듯이 천주교도 단색이 아니라 예수회, 베네딕트, 프란시스, 갈멜 등 다양한 색깔의 영성이 제 고유색을 드러내면서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성공회 역시 복음주의, 앵글로-가톨릭, 자유주의 및 광교회파가 제 색깔을 있는 대로 내면서 하나의 과일바구니 혹은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속한 전통의 유산과 고유색을 좀 더 의식화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한 교회의 일치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전 세계 교회의 일치에도 진정으로 도움이 되리라는 얘기일 따름이다.

웨스터호프는 서문 첫머리에서 미국 성공회 기도서의 기도문을 인용했거니와 나는 서문 말미에 우리 기도서 “교회일치” 기도문을 인용한다: “전능하신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수난하시기 전에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신 것 같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모든 지체들이 성령께서 이루시는 화해와 일치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2004년 기도서 107쪽) 그동안 획일적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사회의 경험 탓인지 우리는 하나 됨을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차이가 없이 똑같아지는 것에서 찾으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과일바구니를 생각하면 사과는 사과답고 수박은 수박 같아야 오히려 전체 과일바구니에 기여하는 것이다. 성공회다움을 얘기하는 것은 분파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실질적으로 에큐메니칼할 수 있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삼위일체가 셋으로 구별되나 하나이듯 성공회는 성공회답게 구별될 수 있을 때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다른 교회들과 상통할 수 있다. 성공회는 출발 자체가 영국의 교회는 영국다워야 진정하게 가톨릭교회의 일원이 되는 거라는 자의식을 가졌다. 즉 가장 지역적이 됨으로써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의 성공회도 가장 성공회다울 때 그리스도교의 하나 됨에 기여할 수 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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