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서
웨스터호프는 굳이 그리스도교는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것이지 책의 종교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의 말씀이란 기록된 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이다. 다만 우리가 이분에 대해 알고자 할 때 관련된 기록이 성서 특히 복음서에 들어 있기 때문에 성서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구분은 성서문자주의가 팽배한, 그래서 성서의 문자기록을 거의 우상처럼 그대로 신봉하는 한국의 풍토에서는 특히 기억해 둘 만하다. 성서에 기록된 문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고 보면 우리는 성서와 끝없이, 늘 새롭게 대화할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인격과는 부단히 만날 수 있을 뿐 어떤 식으로든 박제(剝製)해서 손아귀에 쥘 수 없다. 성서가 우리 신앙과 진리의 근거라고 말할 때 이 긴장관계를 애써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웨스터호프는 이 대목에서 기도서 말미의 “신앙의 개요”(catechism)에서 “성서” 항목을 언급한다(우리나라의 현행 2004년 기도서는 미국 것을 그대로 옮겨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다). 왜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느냐 하면, 비록 사람이 쓴 책이지만 그들은 성령의 감화를 받았으며 하느님은 오늘날도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은 무척 중요하다. 성공회 기도서의 교리는 성서를 “사람이 쓴 책”으로 말한다. 비록 그들이 하느님께 감동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성서를 기록한 저자들이 시대와 문화, 상황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동시에 이 말은 해석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른 시대와 문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해석을 거치지 않고서는 성서의 기록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의미 있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가 왕왕 성서 문자주의로 떨어지는 현실에서 성서-이성-전통이라는 삼중 잣대를 마치 삼위일체처럼 말해온 성공회는 태생부터 성서 문자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성공회의 신학자 마커스 보그가 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성서의 문자-사실주의적 해석이라는 신앙의 옛 패러다임에 맞서 성서의 역사-은유-성례전적 해석을 내세우는)에 성공회는 처음부터 근접해 있다.
“성서가 곧 하느님의 계시”라고 말하는 것과 “성서에 하느님의 계시가 들어있다”고 말하는 것은 같지 않다. 계시를 정의하면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심”이다. 성서는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을 만나고 경험한 개인과 공동체들이 남긴 기록이다. 즉 그 기록에는 하느님의 계시가 “들어있다.” 그러나 그 문자적 기록 자체가 계시인 것은 아니다. 웨스터호프는 성서 자체가 앞선 사람들의 기록을 자기 처지에서 숙고하고 묵상하며 때론 인용하고 때론 은유적으로 해석하고 때론 수정하기도 하면서(신약은 한 마디로 구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재해석하고 전통적 해석을 수정하고 의미를 확대한 기록이다), 해석하고 또 해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소위 “정경”(正經)으로 확립한 성서도 그걸로 해석이 멈춘 것이 아니라 살아 흐르는 강물처럼 애초의 상황과 그 안에서 문자기록이 가졌던 의미 이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또 후대에 전하리라는 것이다. 웨스터호프가 굳이 언급하지 않지만 성공회는 성서도 전통(성서해석의 역사로서)도 어느 때고 멈추는 바 없이 계속 살아 생동하는 걸로 보는 셈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서 성공회는 어느 해석이나 관점이 최종완결판이라고 보는 법이 드물다. 여기서 성공회 영성의 한 특성인 ‘임시성’ 혹은 ‘잠정성’(provisionality)이라는 특성이 우러나온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의 삶과 죽음, 부활에서 하느님이 결정적으로 자기계시를 하셨다고 믿는 신앙이다. 성서는 바로 그 인격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면 복음서는 성서기록 중에도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우리가 주일 성찬례를 드릴 때 다른 책은 다 앉아서 듣다가도 복음서 낭독에 이르면 자리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주일 독서의 배열 역시 복음서를 중심으로 구약과 서신을 골라 읽는다. (구약은 그리스도 사건의 예표 즉 미리 드러냄, 신약서신은 1세기 교회가 그 의미를 해석하고 적용함이라는 의미로. 그러다가 연중주일로 들어가서는 구약 전체를 읽으려는 구도 때문에 이 연관성이 좀 무너진다.) 성공회가 구약과 신약, 복음서를 다루는 방식이 성서기록이란 죄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을 가리키고 만나게 하는 데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식이다. 그 기록들이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은 아니나 그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며 특히 복음서는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에 경전으로서의 지위가 남다르다.
성서의 모든 기록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직 간접으로 증언하는 기록으로 본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 성서 신구약에 부여하는 통일성이라 하겠다. 하지만 성서가 성령의 감화를 받았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인간이 쓴 책으로 본다면, 그래서 시대와 상황, 문화의 제약을 받는 인간들이 남긴 해석의 기록들이라고 본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성서란 상당한 불연속성이 존재하는 경전이다. 신약만 보더라도 메시지도 다르고 심지어 서로 충돌하는 해석도 많다. 성서 자체가 다양한 견해를 담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역사, 특정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 소위 ‘역사적 해석’이 필요한 이유도 거기 있다. 어찌 보면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교회의 위계 피라미드 상위층만이 성서해석권을 독점한 이유, 그렇게 해석해서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자리한 “전통”을 더 내세웠던 이유도 성서의 이러한 쉽지 않은 성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무나 성서를 해석해서는 안 되리만치 성서는 위험한 책이다. 이에 대항해 종교개혁은 성서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끌어내렸다. 개혁의 극단적 입장은 개인이 누구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회는 여기서도 중용(어중간함이 아니라 양극을 포괄, 통합한다는 의미에서)의 입장을 취한다. 즉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맥락에서 함께 경험적으로 알아듣는 것, 그래서 공동체가 함께 식별하고 마음으로 수용한 해석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것이다. 사실 성공회의 기도서란 성서를 예배의 맥락에서 새기려는 목적이 핵심인 책이다.
성공회도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과 마찬가지로 성서를 가장 소중한 경전으로 삼는 교회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회도 성서 전통에 속한 한 부분이라는 점을 웨스터호프는 말한다. 그렇지만 그가 성공회는 성서지상주의(성서 말고 다른 지식은 필요없다는)나 성서의 문자사실주의적 해석(즉 성서의 기록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성서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하느님이 문자 하나하나를 친히 쓰셨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같은 입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아마존 북스토어에 따르면 많은 독자들이 여기 밑줄을 그었다. 아마 성공회란 교회의 특성이 이 문장에서 일목요연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성공회는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해서 과학의 지식을 따르는데 별반 어려움이 없다. 성서의 창조이야기는 우주의 의미와 종국적 귀의처를 밝히는 것이지 과학적 사실을 밝히려는 기록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의 모든 율법적 명령이라도 시대적 제약을 받는다는 점을 당연하게 본다.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뭘 먹어라 마라 하는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 이 점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신의 말씀이라는 입장에 더 많은 어려움을 낳는다.
다양성과 상이함을 끌어안는 전체성 존중의 성공회 영성답게 성공회는 얼핏 불연속성에 가까우리만치 상이한 견해를 담고 있는 성서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전체 맥락과 무관하게 어느 부분만 확대해석하는 식(많은 이단이 그렇게 해서 등장했다)을 피한다. 그리고 적어도 그 구절이 전체를 요약하거나 반영하는 게 아니라면 한두 구절에 근거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많은 성경공부 교재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성공회 기도서는 우리가 성서를 전체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읽되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읽도록, 또 개인이 홀로 읽지 않고 공동체로 모여 공동체의 검증과 승인을 거친 성직자(주교의 안수로 표현되는)가 이끄는 예배의 맥락에서 알아듣고 해석하도록 이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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