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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보잘 것 없는 종의 의무

by 푸드라이터 2013. 10. 9.

보잘 것 없는 종의 의무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06일 연중 27주일 설교 말씀)


“주 안에서 바보 되고 주 위하여 손해 보라!” 85세를 일기로 하늘나라에 가신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운 장기려 박사가 제자들에게 즐겨 가르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춘원 이광수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을 때 담당 의사였던 장기려 박사를 가리키면서 “당신은 바보 아니면 성자야!” 하고 말했듯이 그는 젊어서부터 바보처럼, 그리고 성자처럼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어느 정월 초하룻날 아침 한 제자가 세배드릴 때 선생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는 “금년에는 날 좀 닮아서 살아 봐” 하고 덕담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제자는 “선생님 닮아 살면 바보 되게요?” 했답니다. 선생은 껄껄껄 웃으면서 “그렇지,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 서점 바로가기 클릭)


세상을 똑똑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도 어렵지만 바보처럼 겸손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가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어느 새신자가 신부님께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신부님, 교회 신자들은 참 신기합니다.” “왜요?” “일주일 동안 피곤하고 바쁘게 지내고서 주일날 이렇게 교회들을 나오고, 게다가 뭐 생기는 것도 없는데 저렇게 열심히 봉사들을 하니 신기할 수밖에요.”


각박한 세상에서 늘 번뜩이는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 보기엔 교회가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그 안에서 울고 웃고, 때로는 감격하기도 하고, 없는 힘을 얻는 것을 보면 세속에서 볼 수 없는 기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더군다나,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데 남을 도와준다든가, 남을 위해서 궂은일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영악한 이해타산에 물 들은 사람들에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위대한 신앙의 힘이고, 영적인 능력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세상에서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어버린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으면서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이루어내는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그 영광과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뿌리에서 이웃을 위한 봉사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믿음의 뿌리에서 나오지 않는 봉사는 교만일 수 있고, 위선적인 자기 과시가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처받기도 쉽습니다. 또한 무슨 보상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은 참다운 의미의 봉사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농사나 양치는 일을 하는 종이 하루 종일 들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주인이 “가서 내 저녁부터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 나서 음식을 먹어라” 하고 말한다면 종의 심정은 어떨까요? 고단하게 지친 사람이 다시 남의 식사를 준비하고 그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순간은 꽤나 지루하게 여겨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인심 참 야박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그 종이 명령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고마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종으로서 주인을 섬기고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종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자신의 의무를 하고 칭찬이나 감사나 보상을 바라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섬김’이라는 것은 그만큼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빵집의 주인이 뜨내기한테 빵 값을 올려 받을까 잠시 고민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가격으로 받는 것이 주변의 평판도 좋게 되고 나중에 더 장사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상 가격을 받았다면 그것은 순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양심 그 자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종으로서 우리의 의무를 다할 뿐입니다. 그 동기가 순수한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일 때 참다운 기쁨이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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